“평생 일로 갚아야할 빚쟁이라던 태석이 형 말 생생”

8 hours ago 4

이태석신부기념관 이세바 관장
“우리가 잃은 것들 돌아봤으면”
선종 15주기 다양한 추모행사

이세바 관장은 “이태석 신부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은 안타깝지만, 뒤에 남은 우리가 그의 정신을 더 멀리, 넓게 퍼트린다면 하늘에서 분명 기뻐하며 웃을 것”이라며 “그의 삶과 정신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전시회와 추모 영화 상영회 등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부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이세바 관장은 “이태석 신부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은 안타깝지만, 뒤에 남은 우리가 그의 정신을 더 멀리, 넓게 퍼트린다면 하늘에서 분명 기뻐하며 웃을 것”이라며 “그의 삶과 정신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전시회와 추모 영화 상영회 등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부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난주에는 200여 명의 나환자들이 있는 한 마을을 다녀왔다. 한 달 치의 약을 주면서 한 말 정도의 곡식과 약간의 식용유도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나환자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한 어머니가 네 살 남짓한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왔길래 검진을 해 보니 나병이 아니더구나. … 하지만 기쁨 대신에 실망으로 가득한 아이와 어머니의 눈을 보면서 가난의 끔찍함을 몸서리치게 느낄 수 있었다. … 때 낀 비닐 포대를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는 모녀의 뒷모습을 보기가 너무 안쓰러워 살짝 불러 곡식과 기름을 주어 보냈다.”(‘이태석 신부 서간집’ 중)

올해는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사랑과 헌신을 실천했던 이태석 요한 신부(1962∼2010)의 선종 15주기가 되는 해다. 이 신부의 삶을 기리고 재조명하는 작업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부산 서구 이태석신부기념관은 6월 한 달간 ‘선종 15주기 기념전―기적 miracle’과 영화 ‘이태석’ 상영회, 추모 미사, 토크쇼를 연다. ‘이태석 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이 신부가 친구와 지인에게 쓴 편지 71통을 담은 ‘이태석 신부 서간집’을, 인제대 의대 이태석연구회는 10명의 학자가 이 신부의 삶을 분석한 ‘모든 날이 좋았습니다’를 지난달 말 출간했다. 이 외에도 지난달부터 관련 심포지엄, 영성 강좌 및 미사 등이 열리고 있다.

12일 이태석신부기념관에서 만난 이세바 관장(신부)은 이태석 신부와 함께 생활했을 때의 일화를 전했다. 그는 이 신부와 같은 살레시오 수도회 출신이다.

“태석이 형은 재주가 참 많았어요. 그래서 ‘왜 하느님이 형에게는 다 주고 나한테는 하나도 안 줬는지 불공평한 것 같다’고 푸념했지요. 그랬더니 ‘나는 빚쟁이야. 하느님께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아서 다 갚으려면 죽을 때까지 더 많은 일을 해야 해’라고 웃으며 말하더군요.”

이 신부가 사목했던 남수단 톤즈의 선교 시설은 지금도 세계 살레시오회가 맡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 선교사는 현재는 없는 상태. 3명이 있었으나 질병과 현지 적응의 어려움 등으로 철수했다고 한다. 이 신부가 얼마나 가혹한 환경을 이겨내고 사목 활동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관장은 “지금의 교육, 의료 시설 등은 사실상 이태석 신부가 거의 다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내전 때문에 총을 들던 아이들이 이 신부가 학교를 세우면서 총 대신 연필을 잡았고, 그 씨앗이 지금은 남수단에서 꽃과 열매로 피어났다”고 말했다. 당시 제자 중 의사, 의대생이 된 사람만 50명이 넘고, 공무원 언론인 약사가 된 아이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하다고 하기에 ‘형이 생각하는 행복은 뭐냐’고 물었더니, ‘뭔가를 가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진 걸 그날그날 미루지 않고 나누다 보니 행복해졌다’고 하더군요.”

이 관장은 “이태석 신부가 남긴 사랑과 헌신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며 “이 신부의 삶을 통해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돌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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