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카르텔 테러단체 첫 지정… 마약 실험실 군사 공격도 검토
168㎝ 다소 작은 키 때문에 ‘땅딸보’라는 의미인 ‘엘 차포(El Chapo)’로 불려온 구스만은 1957년 멕시코 시날로아주에서 태어났다. 1970년대부터 멕시코 최대 마약밀매 조직 과달라하라에 들어가 콜롬비아 등에서 생산된 코카인을 미국으로 밀반입하는 일을 맡으며 사업 수완을 발휘했고 간부로 승진했다. 이후 과달라하라 수장이 경찰에 체포돼 조직이 와해될 위기에 놓이자 그는 재빠르게 남은 조직원을 모아 시날로아 카르텔을 만들었다.
미국 펜타닐 65% 유통하는 마약 제국
‘로스 차피토스’(Los Chapitos·작은 차포들)로 불리는 아들 4형제는 코카인 대신 생산과 운송이 쉬운 펜타닐을 미국에 불법 유통시켜 아버지의 체포로 침체된 ‘마약 제국’을 재건했다. 펜타닐은 원래 고통이 심한 암 환자 등에게 투약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의료용 진통제이지만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80배를 넘는 강한 중독성과 환각 효과 때문에 마약으로 사용돼왔다.
미국에선 지난 10년 새 펜타닐 유통량이 꾸준히 늘었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폭증세를 보였다. 실제로 미국에선 매년 7만~10만 명이 펜타닐로 사망하고 있다. 특히 18~49세 미국인의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중독일 정도다.
펜타닐의 치사량은 2㎎에 불과하다. 뾰족한 연필심 끝에 살짝 묻힌 정도의 양이다.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미국 저소득층은 병원에 가는 대신 진통제로 버티려는 경향이 강해 펜타닐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진통제를 구할 경우 합법 약물로 위장한 펜타닐을 사게 될 수도 있다.
로스 차피토스는 멕시코를 펜타닐 경유지에서 주요 생산지로 바꿔놓았다. 이들은 시날로아주에 흩어져 있던 비밀 생산시설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규합해 중국에서 밀수입해온 전구체로 펜타닐을 대량생산했다. 심지어 시날로아 카르텔은 대학 캠퍼스를 인재 모집 거점으로 삼아 화학과 학생들을 모집해 펜타닐 제조에 투입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시날로아 카르텔이 화학 전문 지식을 갖춘 학생 등 고학력 인재 영입에 공을 들여왔다고 밝혔다. 게다가 시날로아 카르텔은 항공기, 선박, 터널, 육로 등을 통해 미국으로 펜타닐을 대량 유입시키고 있다. 시날로아 카르텔은 현재 미국에서 유통되는 펜타닐의 65%를 담당하고 있다. 앤 밀그램 미국 마약단속국(DEA) 국장은 “이들 4형제는 글로벌 마약 제국을 물려받아 더욱 잔인하고, 더욱 난폭하며, 더 치명적인 제국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마약 카르텔 입국 금지되고 자산도 동결
카르텔들이 테러단체로 지정되면 미국 기업이나 개인은 이들과 거래가 금지되고, 해당 조직을 돕는 사람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 은행 등은 보유 중인 카르텔의 자산을 동결해야 한다. 또 국제 금융기관들과 거래 등 해외 결제망도 차단된다. 카르텔 조직원들의 미국 입국도 금지된다. 미국 국민이 카르텔과 거래한 사실이 적발되면 최고 20년형, 사망자가 발생하면 종신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팸 본디 미국 법무장관은 마약 카르텔 단속에 가용 자원을 집중할 수 있도록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재 명단에 오른 러시아 재벌의 해외 재산을 추적하고 압류하는 역할을 맡았던 태스크포스(TF)의 운영이 중단되고, 소속 검사들은 마약 카르텔 단속 업무를 맡게 된다. 또 외국 정부에 대한 기업의 뇌물 사건을 추적하는 해외부패방지법(FCPA) 관련 TF가 마약 카르텔의 뇌물 사건을 우선해서 맡는다.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정책 우선순위를 변경해 마약 카르텔 단속에 자원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인 2019년에도 특정 멕시코 카르텔을 테러단체로 지정하려 했지만 멕시코 정부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중남미 마약 카르텔 집중 타격
특히 주목할 점은 트럼프 2기 정부가 마약 카르텔에 대한 군사 공격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마약 카르텔을 대상으로 한 군사 공격 여부와 관련해 “해외 테러 조직에 대해서는 모든 옵션이 고려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카르텔의 마약 실험실에 대한 드론 공격 등 군사 행동을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테러단체 지정 대상이 될 중남미 마약 카르텔로는 시날로아를 비롯해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마약 범죄조직인 할리스코 누에바 제네라시온(Ca′rtel de Jalisco Nueva Generacio′n·CJNG)과 엘살바도르의 MS-13, 베네수엘라의 트렌 데 아라과(Tren de Aragua), 콜롬비아의 클란 델 골포 등이 있다.
미국 일각에선 마약 카르텔들이 트럼프 2기 정부의 해외 테러단체 지정에 반발해 무력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테러 전문가 브라이언 마이클 젠킨스 연구원은 “마약 카르텔은 쉽게 진짜 테러조직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펜타닐과의 전쟁’에서 승리할지 주목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76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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