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영장 발부 판사 등 신상공개
“법치는 죽었다” 항의-반발 격화… 법원 앞 집회 2030 남성 다수 참가
경찰, 협박 글 작성자 추적 나서
전문가 “사적테러… 엄중 처벌해야”
“이순형 (판사) 빨갱이! 신한미 (판사) 빨갱이!”17일 오후 5시 55분경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인근에 모여 있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앞으로 뛰쳐나오며 판사들의 이름을 외쳤다. 윤 대통령 1, 2차 체포영장을 발부했던 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들의 이름이었다.
전날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체포적부심을 기각한 소준섭 (판사) 출퇴근길에 잡히면 참수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 체포적부심 청구를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판사를 살해하겠다는 협박 글이었다. 경찰은 작성자 추적에 나섰다.
● 특정 판사 규탄 조화·기자회견까지윤 대통령이 체포되고 구치소에 구금되면서 지지자들의 항의도 격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발부했거나 체포적부심을 기각한 법원 앞에서 연일 집회를 벌이는가 하면, 일부 지지자들은 특정 판사 신상을 공개해 비방을 유도하는 이른바 ‘좌표 찍기’에 나섰다.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서부지법 앞은 대통령 지지자들의 불법 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법원 청사로부터 100m 이내에서는 집회를 열 수 없지만, 지지자들은 17일 영장 청구 직후 법원 정문으로 몰려와 “법도 안 지키는 판사 새X” “판사만 불법하냐. 우리도 불법할 수 있다”고 외쳤다. 경찰의 해산 명령에 “판사나 잡아가. 법은 무너졌다”며 야유하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한 체포적부심이 기각됐을 때도 법원 앞에서 불법 집회를 열고 “판사는 빨갱이” “법치는 죽었다”고 외쳤다.
특히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발부한 판사와 체포적부심을 기각한 판사 이름을 적시해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 17일 오후 2시경부터 서부지법으로부터 150m가량 떨어진 서울 마포경찰서 앞 좌측 인도에서 부정선거부패방지대 등이 신고한 집회가 열렸는데, 집회 참가자들은 “이순형 (판사) 탄핵하라” “신한미 (판사) 탄핵”이라며 판사들의 실명을 외쳤다.
서부지법 앞에는 이 판사들을 조롱하는 근조 화환도 놓였다. 화환에는 “세계 유일 유희왕 판사 이순형 외 종북 판사 일동 삼가 서부지법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문구가 담겼다. 판사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까지 벌어졌다. 17일 오후 1시경 부정선거부패방지대 등은 서부지법 앞 우측 인도에서 ‘대통령 불법 영장 신한미 판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신 부장판사에 대해 “권력의 노리개가 된 좌파 판사”라고 주장했다. 100여 명은 법원 앞에서 밤새 연좌농성을 벌였다. 서부지법은 이날 청사 출입구를 폐쇄하고 보안을 강화했다.● 판사 신상 공유… “사적 테러”
온라인에서는 판사들의 신상이 공유되기도 했다. 체포적부심을 기각한 소 판사가 중국 법과 관련된 책을 썼다며 ‘판사가 중국인’이라는 황당한 주장도 올라왔다. 정작 책의 저자는 동명이인으로 소 판사와 무관한 인물이다. 소 판사의 출신지를 공유하며 이를 문제 삼는 지역 혐오 발언도 잇따랐다.
판사들이 공격 대상이 된 건 이번뿐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은 지난해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 1심 판결 당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한 신진우 수원지법 부장판사의 사진과 신상을 공유하며 탄핵 서명에 나선 바 있다. 신자유연대는 2023년 9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서울 서초구 서초동과 강남역에 내걸기도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치국가가 금지하는 ‘사적 테러’”라며 “특히 살해 협박 글 등은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권력을 집행하는 이들을 위협하는 행위를 계속 좌시하면 국가 전체의 안전 수준이 낮아질 우려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 집회에서는 20, 30대 남성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패딩, 트레이닝 바지, 캡 모자 등 가벼운 차림을 하고 태극기와 함께 동참했다. 유튜브를 통해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는 윤 대통령 지지 단체 ‘신남성연대’ 역시 젊은 남성들로 이뤄진 단체다. 16일 오후 10시 50분경에는 한 20대 남성이 서부지법 직원의 출입문 개폐를 막다가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최원영 기자 o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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