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이은실 개인전 ‘파고’
당연하게 취급된 고통 표현
파도가 휘몰아치고, 용암이 흐르고, 뼈가 드러난다. 이은실 작가의 개인전 ‘파고’는 출산을 이런 풍경으로 묘사한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두 차례의 출산을 겪은 뒤 완성한 신작들로 구성됐다. 작가는 출산의 경험을 태풍과 화산, 소용돌이 같은 자연 현상에 빗대어 화면에 담았다.
전시의 중심에는 가로 7m가 넘는 대형 작품 ‘에피듀럴 모먼트’가 놓였다. 이 작품은 무통주사가 투여된 뒤 진통이 완화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진 순간을 다룬다. 화면에는 안개에 잠긴 산맥과 용의 모습, 해체된 뼈의 이미지가 겹쳐 나타난다. 작가는 극심한 통증 속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받은 후 경험한 마취 상태를 이같이 풀어낸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출산의 과정은 자연 이미지로 반복된다. 진진통이 시작되기 전의 불안한 상태는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로 표현했고, 출산 중 흐르는 피는 붉은 용암으로 그렸다. 만삭의 몸 안에서 장기들이 위로 밀려 올라오던 압박감은 거센 파도의 형태로 드러난다. 신체 이미지를 직접 재현하기보다 출산을 자연의 풍경으로 바꿔 개인적인 기억을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한다.
전시에는 출산 이후 몸에 남은 흔적들도 등장한다. 회음부 절개는 출산 과정에서 흔히 겪는 일이지만 개인에게 고통으로 남는다. 작가는 분만 중 힘을 주다 눈의 실핏줄이 터진 모습, 임신으로 튼살이 생긴 모습도 작품에 담았다. 신체 일부를 확대하거나 형태를 단순화한 화면은 출산 이후 몸에 남은 변화를 보여준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종이 위에 수묵과 채색을 반복해 쌓는 기법을 사용한다. 먹과 안료가 번지고 스미는 과정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 출산의 경험과 닮았다.
작가는 출산 직후 이 경험을 작업으로 옮기지 못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상이 시작되며 삶이 급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첫 아이를 낳은 후 10년이 지난 후에야 출산 경험을 돌아보고 본격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아본 관람객들은 전시 중인 작품들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시장에 가면 출산 이후 쉽게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떠올려보게 된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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