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비웃는다…각국 부호들이 여름 휴가 전 보는 '이 것' [이윤정의 인사이드&비하인드]

1 week ago 8

몇 년 전부터 국내 럭셔리 브랜드 시장의 매출을 견인하고 있는 일등공신은 주얼리다. 특이한 점은 하이 주얼리의 성장이 가파르다는 사실. 올 1분기 3대 백화점의 하이 주얼리 매출이 55% 이상 성장했다는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매출과 함께 하이 주얼리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불가리 에클레티카 컬렉션 중 세르펜티 스피라 커프(Serpenti Spira Cuff). 로마 건축 기둥의 힘과 대칭에서 영감을 받은 구조로 잠금 장치 없는 유연한 화이트 골드 베이스 위에 하나의 선처럼 이어지는 뱀의 몸체를 구현한다. 중심의 5.08 캐럿의 팬시 비비드 옐로우 페어 컷 다이아몬드의 광채가 인상적이다. / 사진제공. 불가리

불가리 에클레티카 컬렉션 중 세르펜티 스피라 커프(Serpenti Spira Cuff). 로마 건축 기둥의 힘과 대칭에서 영감을 받은 구조로 잠금 장치 없는 유연한 화이트 골드 베이스 위에 하나의 선처럼 이어지는 뱀의 몸체를 구현한다. 중심의 5.08 캐럿의 팬시 비비드 옐로우 페어 컷 다이아몬드의 광채가 인상적이다. / 사진제공. 불가리

하이 주얼리(High Jewelry)는 희귀한 원석을 사용하여 장인에 의해 소량 생산되는 주얼리를 말한다. 대개 디자인 당 한 피스씩만 생산되며, 각 주얼리 브랜드의 디자인과 기술력을 증명하는 주얼리라고 말할 수 있다. 희귀한 원석을 사용하고 예술적인 작품에도 비견될 정도로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기에 가격이 매우 높다. 몇 천만원에서 수십 억에 이른다. 일부 브랜드에서는 파인 주얼리(Fine Jewelry)와 병용해서 사용하기도 하나 엄밀히 말하면 파인 주얼리는 좀더 일상에서 사용 가능한 제품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간 국내에서 하이 주얼리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흔히 볼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브랜드에서도 소수의 VIP를 위한 은밀한 행사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주얼리 역시 개인의 취향을 나타내는 아이템으로 인식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가격대와 디자인의 주얼리가 소개되었다.

여전히 하이 주얼리는 소수의 고객을 위한 제품이지만 각 브랜드가 보유한 원석과 디자인 그리고 세공 기술을 뽐낼 수 있는 대표 아이템이다 보니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소개되는 일이 잦아졌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행사는 고객들이 하이 주얼리를 착용하고 스타일을 과시하는 소중한 이벤트로 자리잡으면서 활성화되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불가리 하이 주얼리 쇼에서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제공. 불가리

최근 서울에서 열린 불가리 하이 주얼리 쇼에서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제공. 불가리

옷과 마찬가지로 하이 주얼리도 매년 한두차례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인다. 주로 각국의 부호들이 여름 휴가를 떠나기 전인 6월에서 7월 초에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하이 주얼리 이벤트는 전세계 VIP를 초청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고급스럽고 덜 알려진 휴양지나 도시에서 열리곤 한다. 단순히 이벤트를 즐기기보다 새로운 제품을 선점하는 시간이기에 브랜드 관계자와 VIP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 이벤트에 참석하는 VIP는 국내에서 엄선하여 모시고 간다. 글로벌 이벤트에는 참석할 수 있는 국내 VIP의 수가 비교적 제한된다. 최근엔 럭셔리 브랜드 시장으로서 높아진 위상과 K-컬처의 힘으로 국내에서 글로벌 이벤트가 펼쳐지는 일이 많아졌고, 이로 인해 더 많은 국내 VIP가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5월에 서울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불가리의 글로벌 하이 주얼리 이벤트가 대표적이다.

수많은 하이 주얼리를 취재하고 접하며 가끔 의문이 들었다. “하이 주얼리가 매년 선보이는 신제품의 주제는 왜 비슷할까? “라는 점이다.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반복적으로 자연, 건축, 별자리, 우주, 역사, 신화 같은 ‘불변하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유는 하이 주얼리 장르 자체가 지닌 본질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하이 주얼리는 다른 품목과 달리 트렌드가 아닌 ‘영원성’을 판매하려 한다. 샤넬의 첫 하이 주얼리 컬렉션 비주 드 디아망(Bijoux de Diamants)은 별, 혜성, 달 같은 천체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는 영원성과 우주적 질서를 상징하는 대표적 모티프였다. 반클리프 아펠은 자사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 “사랑, 자연, 문학, 여행, 동화 같은 영속적인 서사를 반영한다”고 말하곤 한다.

불가리 에클레티카 컬렉션 중 세레스 스카프(Seres Scarf)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 화이트 골드 구조 위에 1600시간이 넘는 장인의 작업을 거쳐 1180개의 개별 요소를 정교하게 조합한 네크리스. 네크리스의 중심에는 스리랑카 산 31. 90 캐럿의 슈가로프 컷 사파이어를 세팅한 브로치가 자리한다. 이 브로치는 탈 부착이 가능해 네크리스의 다양한 위치에 스타일링 할 수 있다. / 사진제공. 불가리

불가리 에클레티카 컬렉션 중 세레스 스카프(Seres Scarf)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 화이트 골드 구조 위에 1600시간이 넘는 장인의 작업을 거쳐 1180개의 개별 요소를 정교하게 조합한 네크리스. 네크리스의 중심에는 스리랑카 산 31. 90 캐럿의 슈가로프 컷 사파이어를 세팅한 브로치가 자리한다. 이 브로치는 탈 부착이 가능해 네크리스의 다양한 위치에 스타일링 할 수 있다. / 사진제공. 불가리

이유는 또 있다. 하이 주얼리는 제품 자체로서뿐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예술작품처럼 시간을 거스르며 브랜드를 표현하는 것이다. 건축이 주제로 자주 거론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건축은 브랜드가 나고 자란 도시와 장소의 문화 자본을 상징하곤 한다. 불가리는 로마 건축과 조각, 고대 모자이크를 반복적으로 차용해 왔고, 올해 선보인 에클레티카(Eclettica) 컬렉션도 조각, 회화, 건축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150 점이 넘는 하이 주얼리 마스터피스 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어로 걸작을 의미하는 9점의 카폴라보리(capolavori)는 불가리가 1884년부터 이어온 장인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티파니앤코의 블루 북 2026 컬렉션 ‘히든 가든’ 중 버드온어락. 브라질 산 산타 마리아 컬러의 22캐럿이 넘는 쿠션 컷 아쿠아마린 위에 한 쌍의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 사진제공. 티파니앤코

티파니앤코의 블루 북 2026 컬렉션 ‘히든 가든’ 중 버드온어락. 브라질 산 산타 마리아 컬러의 22캐럿이 넘는 쿠션 컷 아쿠아마린 위에 한 쌍의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 사진제공. 티파니앤코

[좌] 티파니앤코의 블루 북 2026 컬렉션 ‘히든 가든’ 중 자스민. 약 18 캐럿, D 컬러의 쿠션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  [우] 티파니앤코의 블루 북 2026 컬렉션 ‘히든 가든’ 중 트윈 버드. 잠비아산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져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 사진제공. 티파니앤코

[좌] 티파니앤코의 블루 북 2026 컬렉션 ‘히든 가든’ 중 자스민. 약 18 캐럿, D 컬러의 쿠션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 [우] 티파니앤코의 블루 북 2026 컬렉션 ‘히든 가든’ 중 트윈 버드. 잠비아산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져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 사진제공. 티파니앤코

자연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로, 강력한 생명과 희귀성의 상징으로 다뤄진다. 올 봄 선보인 티파니앤코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블루 북 2026의 주제는 ‘히든 가든’이었다. 티파니앤코의 주얼리 및 수석 예술감독 나탈리 베르데유는 “자연 속에서 섬세하게 펼쳐지는 변화의 순간을 포착했다.”라고 밝혔다.

히든 가든 컬렉션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가지 서브 컬렉션으로 구성되며, 이중 봄 컬렉션에서는 버터플라이, 버드온어락(Bird on a Rock), 파라다이스 버드(Paradise Bird), 앵무새, 비(Bee), 자스민, 국화, 트윈 버드(Twin Bud), 팜(Palm) 트리 등의 모티프를 두루 소개한다. 혹자는 자연을 소재로 한 아이템은 각 브랜드의 세공 기술을 최대치로 표현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강조한다.

꽃잎의 곡선, 새의 깃털, 물결의 움직임 등을 통해 각 브랜드의 세팅, 에나멜·조각, ·젬 커팅 기술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하이 주얼리를 접하게 되면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는데, ‘아름다움’이야 말로 시대를 초월한 강력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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