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혼돈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해 60여 개국을 상대로 초유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힌 여파다. 중국은 미국에 같은 수준의 보복 관세를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세계 경제는 침체에 빠질 것인가. 한국경제신문은 월스트리트에서 명성을 쌓은 전문가들을 만나 세계 경제 전망 및 한국의 대응 전략을 들어보는 연속 기회을 마련했다.
첫 번째 주인공은 2006년 스트래터가스를 공동 창업한 니컬러스 본색 최고경영자(CEO)다. 스트래터가스는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거시경제 전망, 투자 포트폴리오 전략, 정책 연구 등을 해주는 회사다. 헤지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등도 운용한다.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 본사에서 만난 본색 CEO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며 "이민자 추방 정책 등으로 노동시장의 임금 상승 압박까지 거세기 때문에 이르면 올해 말 미국에 스태크플레이션(경기 침에 물가 상승)이 닥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관세 전쟁이 가시화하고 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세계 경제에서 유지돼 온 지정학적 관행을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이렇게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란 통념을 무너뜨리겠다는 얘기죠.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기존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것, 바로 탈세계화입니다. 과거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지요.”
▷관세·비관세 장벽의 기준이 자의적이란 비판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특성에서 나왔을 겁니다. 뉴욕 부동산업계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 유럽, 남미에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어요. 아주 뿌리 깊고 쉽게 바뀌지 않을 신념이죠. 대부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형성됐습니다. 당시 어땠습니까. 미국은 제조업 쇠퇴와 무역적자 확대에 시달리고 있었죠. 일각에서 주요 교역국을 ‘위협 국가’로 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사고는 여전합니다.”
▷미국 정치권도 분열하는 모습인데요.
“그렇습니다. 의회 설득 역시 부족하죠.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단 한 석 차이로 다수당을 지키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려는 주요 정치적 법안이 힘을 받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의회 견제를 덜 받으면서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는 바로 외교와 국방, 통상입니다. 주목을 끌 수도 있고요.”
▷한국 등 협상 대상국은 어떻게 대응하는 게 최선인가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건 명확성입니다. 협상안에는 서로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국방 장비 구입, 자동차 수출 증대, 반도체 공급 확대, 금융서비스 투자 개선 등이 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공적인 협상을 트로피처럼 활용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한 곳에서 성과를 내면 다른 곳에 가서 ‘이 기업이 미국에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홍보하는 식이죠.”
▷관세 전쟁이 결과적으로 미국에 도움이 될까요.
“단기적으로만 보면 내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입니다. 미국 조치에 각국이 어떤 대응에 나설지, 어떤 흐름이 전개될지 모릅니다. 기업들로선 시장 및 재무 계획을 짜기 어렵죠. 이게 길어지면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겁니다. 미국 증시만 놓고 보면 10% 수준의 추가 하락까지 염두에 둬야 합니다.”
▷미국의 경기 침체와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연초만 해도 올해 안에 미국에 경기 침체가 닥칠 가능성은 15% 정도로 제한된다고 봤습니다.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는 지금은 45%로 보고 있어요. 미국 기업들의 이익이 여전히 견조한 편입니다만 무역 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게 문제에요.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기 시작할 겁니다. 누적되면 경기 둔화 또는 침체가 불가피할 수 있어요. 산업 활동이 둔화하고 생활 물가까지 뛰면 연내 또는 내년 초에 침체(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 기대 인플레이션도 급등했죠.
“맞습니다.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이 우선 생산자 물가를 자극하고 있어요. 식품과 에너지, 의류처럼 소비자가 꼭 구매해야 하는 생필품 가격이 뛰는 게 문제입니다. 물가 상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저소득층의 반발이 커지고 있습니다. 침체 속에서 물가는 계속 뛰고 있으니 스태그플레이션을 염려하는 것이죠. 그나마 아직 기업들의 실적이 버텨주고 있는 게 다행이죠.”
▷연방정부 구조조정이 고용시장에 미칠 영향은.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추진하고 있는 연방정부의 인력 감축은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미국 경제 전체로 보면 그렇게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 아닙니다. 워싱턴DC 지역의 주택 시장과 지역 경제에 제한적인 충격을 주는 정도죠. 미국 전체 고용에서 연방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 이민자 정책은 어떤 영향 미칠까요
“이민자 추방 정책은 훨씬 더 큰 경제적 영향을 끼칩니다. 수만 명, 많게는 수십만 명의 이민자가 미국 경제에 참여하고 있고 대부분이 저소득 노동시장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들을 강제로 노동시장 밖으로 밀어내면 남아 있는 노동자들이 같은 일자리에 대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할 겁니다. 노동 공급 감소는 가격 상승, 즉 임금 인상으로 이어집니다.”
▷한국에선 탄핵 등 이슈가 많습니다.
“한국처럼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국가에서는 대통령의 탄핵 사태가 정치 시스템 자체를 흔든다고 보지 않습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혹은 군부 정권이 존재하는 국가들과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한국의 탄핵 사태는 정당 간 정치적 충돌일 뿐이지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불안정이 아닙니다.”
▷한국 신용도엔 어떤 영향 끼칠까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 경쟁력을 갖춘 나라죠. 자동차, 반도체, 방위산업, 전자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산업 구조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큰 신뢰를 줍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매수 기회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국가 신용도에도 당연히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겁니다.”
"미국 소비 여전히 탄탄…아직 우려할 수준 아냐"
카드연체율 저소득층서만 증가
니컬러스 본색 스트래터가스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의 소비 둔화와 관련해선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신용카드 연체율이 올라가고 있지만 저소득층의 이슈일 뿐 미국 전체 소비를 이끄는 고소득층 소비는 여전히 견조하다는 이유에서다.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2월 소매판매는 7227억달러로, 전달 대비 0.2% 증가했다. 전월 대비 0.6% 증가를 예상한 다우존스 집계 전문가 전망을 크게 밑돈 수치다.
신용카드 연체율도 올라가고 있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미국 신용카드 사용자 중 최소 결제만 한 사람의 비율이 10.75%로, 201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30일 이상 연체된 카드 잔액 비율은 3.52%로 전년 동기 대비 1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본색 CEO는 “특히 저소득층에서 신용카드 연체나 자동차 대출 연체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런 연체율 상승은 특정 집단이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신호일 수 있고, 심할 경우 전체 소비지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그 영향이 전체 신용 시장으로 확산하지 않고 있다”며 “회사채나 주택저당증권(MBS) 같은 자산유동화 상품 시장에서도 위험 신호가 명확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본색 CEO는 미국의 소득 계층별 소비 규모를 따져봤을 때 점점 더 상위 소득층으로 소비 활동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소득층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압박이 점점 심화하고 있지만 이런 집단이 미국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 약력 △미국 브라이언트대 경제재정학과
△페어필드대 수학과(석사)
△모건스탠리
△팩트셋 IB(투자은행)부문
△리서치회사 ISI그룹 투자전략가
△2006년 스트래터가스 공동 창업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