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워싱턴선 34년만의 열병식
최대 4500만 달러(약 616억 원)가 투입된 것으로 추산되는 열병식은 성대했다. 에이브럼스 탱크와 스트라이커 장갑차 등이 위용을 과시했고,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USA”를 환호했다. 친(親)트럼프 성향인 폭스뉴스는 “동맹에는 위안이 되고, 적국에는 억지력이 될 장면”이라고 전했다. 반면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과시는 오히려 미국이 과거 영광에 집착하며 동맹국을 부담스럽게 여긴다는 부정적 인상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미 전역에선 ‘노 킹스(No Kings)’ 시위도 열렸다. 2000여 곳에서 열병식을 겨냥한 ‘맞불 집회’가 동시다발로 진행된 것.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반(反)트럼프 시위로는 최대 규모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엔 가장 많은 8만여 명의 시민이 모여 “왕은 없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극심해진 미국 내 분열상이 고스란히 노출된 하루란 평가가 나온다.트럼프 ‘생일파티’된 최대 열병식 vs 美2000곳 “노 킹스” 최대 시위
생일날 反트럼프 시위
육군 250돌 열병식, 걸프전후 최대… “616억원 세금들여 생일자축” 비판도
‘건국 도시’ 필라델피아 8만명 운집
“내가 누린 美, 우리 아이도 누리게”
● 트럼프 “美 위협하면 몰락은 완전하고 철저할 것”
이날 열병식을 참관한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 육군은 악의 제국의 심장에 총검을 꽂았고, 악랄한 독재자들의 야망을 미 전차의 궤도 아래에 짓밟았다”며 “미국인을 위협하면 우리 군인들이 당신을 찾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당신의 패배는 확실하며 그 몰락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고 철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앞서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는 ‘바스티유 데이’ 퍼레이드를 2017년 프랑스 파리에서 지켜본 후 워싱턴에서 비슷한 행사를 개최하길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럼프 1기 때 군 수뇌부 등이 말려서 못 했고, 재집권 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충성파’들을 배치한 뒤에야 소원을 이뤘다고 주요 매체들은 전했다.
이날 열병식엔 최초의 미 육군 차량과 1차대전 때 사용된 전차, 미 육군 주력 탱크까지 선보였다. 다만 “드론과 사이버 무기 등으로 바뀐 현재의 전쟁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구식 무기 전시’”라고 NYT는 꼬집었다. 4500만 달러에 달하는 열병식 비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NBC와의 인터뷰에서 “애국심을 고취하고 미국의 힘을 세계에 보여주는 데 있어 푼돈”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원조나 기초과학 연구 지원 예산 등을 줄인 트럼프 행정부가 혈세를 ‘군사 쇼’에 쏟아부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열병식 개최 시점도 논란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로스앤젤레스 시위 대응을 위해 주방위군과 해병대까지 동원했다. 자국 시민을 상대로 병력을 동원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열병식을 연 건 부적절하단 지적이 나오는 것. 트럼프 대통령이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군을 부적절하게 이용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연단에 올랐을 때 일부 군중은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 ‘파티장’을 방불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 ‘건국의 도시’ 필라델피아에 8만 명 ‘反트럼프’
‘노 킹스’ 시위가 미 전역에서 열린 이날 필라델피아에만 8만여 명이 운집했다. 시위 시작 시간은 정오로 예고됐지만, 시위 참석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필라델피아 시청 옆 ‘러브 광장’에 모였다. 현장에는 경찰이 배치됐고, 공중에는 헬기와 드론이 떠다녔다.
이날 워싱턴이 아닌 필라델피아에서 대규모 반트럼프 시위가 열린 건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열병식을 방해하는 시위에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시위 주최 측은 정부 당국과 충돌을 피하고 동시에 워싱턴 이전 미국 수도였던 ‘건국의 도시’ 필라델피아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하려 했던 것이다.
이날 시위는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시위대는 필라델피아 미술관까지 2.5km를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을 희화화한 조형물과 거꾸로 든 성조기 등을 들고 행진했다.
시위 참가자인 개비 씨는 “나는 시민권자지만 가족들은 멕시코에서 와서 일하고 있다”며 “(가족들이) 두려움을 느껴 내가 대신 나왔다”고 했다. 신생아인 딸을 안고 참가한 에밀리 씨는 “내가 누렸던 것과 같은 미국을 아이가 누리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위에 왔다”고 했다. 뉴저지주, 버지니아주 등 다른 지역에서 온 시민들도 여럿 있었다. 한 시위 참가자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필라델피아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어 다른 주에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필라델피아=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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