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행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하버드대학교가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인 여학생을 졸업 연설자로 내세웠다.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중국 여성이 학생 연사로 선정된 사례가 중국과 미국 양국에서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비롯한 외국인 학생들의 비자를 "공격적으로 취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지 며칠 만에 중국 학생이 '공동 인류'를 강조하며 세계적 통합을 촉구하는 졸업 연설을 하버드에서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는 평가다.
졸업생 대표로 졸업 연설을 한 루안나 장(중국 이름 장위룽·25)은 중국 동부에서 성장한 뒤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미국 듀크대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행정대학원)에서 국제개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저개발국 빈곤퇴치 등을 포함한 국제개발 분야를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고 투표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바다 건너 편에 있든 바로 우리 옆에 있든, 단순히 틀렸다고 믿지 않는다"며 "우리는 그들을 악하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꼭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호 연결된 세계를 형성하는 데 유학생의 역할이 중요한데도 다양성으로 구축된 세계가 분열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전했다.
연설을 마친 후 장씨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빈곤 퇴치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 하지만 다시 미국에 돌아올 수 없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인류를 돕고 싶어 했는데,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적인 상황에 휘말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장씨가 졸업 연설을 한 날, 공교롭게도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세계 공관에 외교 전문을 보내 유학생 비자 신청자들의 SNS를 검증하라고 요구했다. 최근 미국 연방 법원도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인 'SEVP'의 인증 취소를 차단해달라는 가처분을 인용하기도 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와 대학, 특히 하버드대와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미 국토안보부는 하버드대가 외국인 학생 관련 정보를 제출하라는 정부 요구에 불충분하게 대응했다며 지난 22일 하버드대에 부여된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tudent and Exchange Visitor Program·SEVP) 인증을 전격 취소하기도 했다. 법원의 결정으로 정부의 정책 집행에 일시 제동이 걸렸지만, 외국 학생들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하버드대 졸업식에서는 학문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저항의 목소리와 외국인 학생과의 연대를 나타내는 표식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학사모에 졸업 가운을 입고 캠퍼스 중앙광장인 하버드 야드의 행사장에 모여든 일부 졸업생들은 가슴이나 모자를 흰 꽃으로 장식해 외국인 학생들을 향한 연대와 지지를 전했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이 졸업식 축사를 위해 연단에 올라 "환영합니다"라고 입을 떼자 졸업생들은 긴 기립 박수를 보냈다. 가버 총장은 미 대학들과 트럼프 행정부와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서며 학문의 자유를 대변하는 투사로 떠올랐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 와중에 장씨가 중국 공산당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자신을 공화당 관계자라고 소개한 알렉산더 뮤즈는 SNS 엑스(X·옛 트위터)에 "장씨는 공산당의 자금 지원과 감시를 받는 NGO의 대표"라며 "그녀의 발언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외교적 수사를 앵무새처럼 되뇐 것"이라고 주장했다.
SCMP는 장씨가 중국 정부가 1985년 설립한 환경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고 이 단체의 사무총장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하버드대에 지원한 기록이 있다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