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反유대주의 근절" vs 하버드 "대학 독립성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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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시위대가 하버드대에 대한 연방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한 시위자가 ‘하버드에서 손 떼라’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시위대가 하버드대에 대한 연방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한 시위자가 ‘하버드에서 손 떼라’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하버드대가 ‘반(反)유대주의 근절’ 등을 핵심으로 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학칙 개정 요구를 거부했다. 미국 대학들이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비슷한 압박을 받는 가운데 주요 명문대 중 처음으로 하버드대가 반기를 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하버드대에 23억달러(약 3조2000억원) 규모 지원을 동결했다.

◇하버드대 “정부, 전례 없는 요구”

트럼프 "反유대주의 근절" vs 하버드 "대학 독립성 침해"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14일(현지시간) 교직원과 학생에게 보낸 글에서 “어느 정권이 집권하든 정부가 사립대에 무엇을 가르치고, 누구를 입학시키고 채용하며, 어떤 연구를 할지 지시해선 안 된다”며 “연방 정부가 하버드대 커뮤니티를 통제하기 위해 전례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의 요구 사항은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있으며 대부분 하버드대의 ‘지적 환경’에 대한 직접적 규제에 해당한다”며 “하버드대는 독립성과 헌법상 권리를 놓고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반유대주의를 근절하지 않으면 하버드대에 지원하는 총 90억달러 규모 보조금과 용역 계약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하버드대는 트럼프 행정부와 가까운 로비 회사와 계약을 맺고 중동연구센터 책임자를 교체하는 등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1일 하버드대 등 주요 대학에 ‘지속적인 재정 지원을 위해 필요한 아홉 가지 조치 실행’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공문에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 폐지, 교수 채용 자료에 대한 감사 수용을 비롯해 학생 입학 자료를 연방 정부에 넘기라는 요구가 담겼다. 외국인 유학생 입학 절차를 바꿔 테러나 반유대주의 성향의 학생을 걸러내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하버드대가 이를 거부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곧바로 “하버드대의 결정은 연방 정부 투자(지원)에 관해 시민권법을 준수할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하며 하버드대에 대한 지원 일부를 동결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연방플라자 광장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하다가 구속된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마흐무드 칼릴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가 ‘이념은 추방할 수 없다’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연방플라자 광장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하다가 구속된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마흐무드 칼릴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가 ‘이념은 추방할 수 없다’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가자 전쟁 계기로 갈등

이번 갈등의 뿌리는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적으로 ‘이스라엘 지지냐, 팔레스타인 지지냐’를 두고 여론이 갈린 가운데 미국 주요 대학에선 반유대주의 시위가 확산했다. 하지만 대학 당국은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이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보수적인 공화당은 물론이고 막강한 자금력과 영향력을 갖춘 유대계는 반유대주의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기류였다. 2023년 12월 미국 연방하원 청문회에서 반유대주의에 관해 모호한 답변을 내놓은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유펜) 총장이 고액 기부자 등의 압력에 밀려 사퇴한 게 대표적 사례다. 당시 매길 총장은 ‘유대인을 죽이자고 외치는 학생은 대학의 윤리 규범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공화당 의원 질문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답변을 반복해 보수층과 유대계의 반발을 샀다. 이후 그를 향한 사퇴 압박이 거세졌고 결국 사퇴로 이어졌다. 청문회 때 비슷한 태도를 보인 클로딘 게이 당시 하버드대 총장도 지난해 1월 논란 끝에 사퇴했다. 민주당 정권인 조 바이든 행정부도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올해 1월 친이스라엘 색채가 짙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주요 대학에 반유대주의 근절 압박이 더 세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컬럼비아대에도 지원금 4억달러를 삭감했고 브라운대, 프린스턴대, 코넬대 등에는 보조금 삭감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컬럼비아대는 중동학과를 별도 감독하에 두고 캠퍼스 내 반이스라엘 시위를 단속할 보안팀을 신설하기로 트럼프 행정부와 합의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민주당 성향이 강한 미국 대학을 상대로 ‘이념 전쟁’을 벌이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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