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정보 채널만 1200여개…'무료 블룸버그' 꿈꾸는 텔레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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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지표 속보) 메모리반도체 1~10일 잠정 수출 전년 대비 53.2% 증가.’

‘에픽(epic) AI’란 이름의 한 텔레그램 채널은 열흘마다 주요 업종별 수출 속보를 구독자에게 전송한다. 관세청 통계를 ‘주식 투자자 맞춤형’으로 가공한 이런 속보는 기존 미디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콘텐츠다.

에픽 AI처럼 전문 영역에서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텔레그램 채널이 급증하고 있다. ‘뉴스 큐레이션(선별)’부터 통계자료 분석까지, 간단한 구독 절차만 거치면 무료 정보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워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투자정보 채널만 1200여개…'무료 블룸버그' 꿈꾸는 텔레그램

경제·금융 정보 채널 급증세

11일 SNS 통계 사이트인 텔레메트리오에 따르면 국내 텔레그램의 경제·금융(Economy & Finance) 분야 채널은 모두 1226개로, 최근 1년 사이 35% 급증했다. 이들 채널 구독자는 총 457만 명에 달했다. 1년 사이 32% 늘어났다. 전체의 약 10%인 126개 채널은 1만 명 넘는 구독자를 자랑한다. 경제·금융 채널뿐만 아니라 암호화폐부터 영화, 음악 분야까지 합친 국내 1만8000여 개 채널의 구독자는 3797만 명에 달한다. 2020년 말 20만 명 수준에서 200배 가깝게 불어났다.

정보 채널로서의 텔레그램 이용이 급증한 것은 전문성과 익명성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2013년 러시아 태생 파벨 두로프가 개발한 텔레그램은 누구나 익명으로 간단하게 정보공유 채널을 개설할 수 있는 서비스를 지향해 왔다. 그 덕분에 기존 미디어에서 정보를 충분히 얻기 어려운 암호화폐 등 분야에서 폭넓은 정보를 접할 수단으로 성장했다. 투자 추천과 손실 관련 책임 부담을 느끼지 않는 익명의 채널 운영자들이 거리낌 없이 암호화폐를 추천하고, 매수·매도 시점을 제공하며 호응을 얻은 결과다.

국내에선 암호화폐 외에 ‘주식’ 관련 정보 취득 창구로서의 활용성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경제·금융 분야 채널 수는 전체의 7% 수준으로 네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12%), 암호화폐(12%), 음악(7%) 다음으로 크다. 미국의 경제·금융 분야 채널 비중(9위)이나 중국(13위), 일본(20위)과 비교해 활용도가 훨씬 높다.

‘큐레이션’ 서비스로 관심

텔레그램이 국내 경제·금융 분야에서 다른 SNS보다 많이 쓰이는 배경엔 신속한 큐레이션이 자리 잡고 있다.

한경에이셀이 운영하는 ‘epic AI’ 채널은 주식 시황과 산업 지표, ‘지금 SNS에서 관심을 갖는 종목’ 등 기존 미디어에서 접하기 어려운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쏟아내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하루 수백 건의 콘텐츠를 생산하며 서비스 개시 한 달 만에 1000명 넘는 구독자를 확보했다.

‘어웨이크(AWAKE)’란 채널은 기업 공시 서비스로 구독자 4만3000명을 확보했다. 펀드매니저 출신 대표가 운영하는 이 채널은 투자에 도움을 줄 만한 전자공시를 빠르게 정리해 전달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익숙하지 않거나 주요 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수요자가 주요 타깃이다. 독립 리서치회사를 표방하는 또 다른 채널은 수출입 통계 등에 기반한 분석 자료 수십 개를 매일 제공해 구독자 3만여 명을 모았다.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를 찾는 데 유용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한국과 달리 해외에선 암호화폐와 외환, 금 등 상품 관련 채널이 압도적으로 많다. 트레이더를 포함한 수많은 운영자가 최신 정보와 매매 의견을 전달하면서 전문 미디어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는 암호화폐 관련 텔레그램 채널만 6000여 개가 존재한다. 인기 채널인 ‘머니 앤드 크립토 뉴스’ 구독자는 570만 명에 달한다.

실시간 ‘전문가 팁’ 매력

텔레그램에 투자자가 몰리면서 국내 증권회사와 미디어도 공식 채널을 개설해 콘텐츠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 중에는 ‘키움증권 미국주식 정보’가 가장 많은 2만9000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미국 뉴스와 관련 분석 자료를 빠르게 요약·정리한 덕분이다. 다음으로 ‘메리츠증권 리서치’(2만2000명), ‘유진투자증권 코스닥벤처팀’(2만2000명) 등이 인기다. 한경미디어그룹은 한국경제신문 채널과 함께 ‘한경 마켓PRO’ ‘한경 바이오인사이트’ 등 전문 콘텐츠 채널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애널리스트와 미디어 채널은 양질의 전문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텔레그램 경제·금융 채널의 질적 성장에 기여해왔다. 하나증권의 김경환, 미래에셋증권의 유명간 애널리스트는 개인 채널에서만 각각 2만 명 넘는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김 애널리스트는 “실시간으로 접하기 힘든 뉴스에 관한 평가나 투자 팁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투자자들이 텔레그램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텔레그램은 빠르고 간편하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많은 리서치센터에서 정보 배포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익명의 ‘두 얼굴’ 주의해야

인기 채널 대부분은 푸시(push) 서비스 방식의 ‘단방향’ 정보만 제공하며 좋은 평판을 얻는 데 집중하고 있다. 양질의 정보로 더 많은 구독자를 끌어모으게 하는 경쟁 시스템은 경제·금융 채널의 성장을 뒷받침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텔레그램 정보를 온전히 무료로 보긴 어렵다. 좋은 평판을 얻은 많은 운영자가 다른 유료 서비스를 홍보하거나 회사를 알릴 목적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금융 분야 최대인 9만 명대 구독자를 보유한 한 채널은 구체적인 매수·매도 전략을 제공하는 별도의 유료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한 투자자문사는 ‘가치 투자’ 정보지 성격의 채널을 운영하며 6만여 구독자에게 회사 블로그를 홍보하고 있다.

익명성을 악용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의 잦은 접근 시도 역시 텔레그램 대중화의 큰 걸림돌이다. 이용자를 무작위 대화방에 초대해 투자를 권유하는 불법 행위도 잇따르고 있다. 개정 자본시장법(작년 8월 14일 시행)은 등록 투자자문업자가 아니면 오픈 채팅방(양방향 채널)을 통한 투자정보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 채널에서 주식 매수를 유도하는 행위에 넘어갔다간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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