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산업을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뉴진스 사건’이 매듭 수순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해린, 혜인, 민지, 하니, 다니엘까지. “민희진 없는 어도어(뉴진스 소속사)에서는 절대 일할 수 없다”며 회사를 박차고 나간 멤버 다섯 명 전원이 복귀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속계약 지키라”는 법원 1심 판결에 항소를 포기하고 결국 물러선 것이니 뉴진스에게는 완패에 가까운 결말이다. 어도어의 모회사인 하이브 주주들에게는 반가운 결말이다. 복귀 뉴스가 나온 바로 다음날 주가가 5% 가까이 뛰어올랐다. 소속사는 뉴진스가 돌아올 날에 대비해 신곡까지 다 준비해뒀다고 하니 머지않아 컴백 무대를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안 그래도 수명이 짧은 아이돌 세계에서 1년 넘는 시간을 흘려보낸 뉴진스는 예전 인기를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반응이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아 보인다. “계약을 했으면 지켜야지.” “이제 정신 차렸나.” 최연장자가 21세, 최연소는 17세인 이들에게는 야속한 댓글이겠지만 여론의 대세가 그렇다. 물론 대중은 ‘방시혁 대 민희진’이라는 어른들 싸움에 휘말린 어린 소녀들에게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계약 준수’는 그것과는 별개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인기 정상의 아이돌이 소속사와 다툼에 휘말리는 일은 꾸준히 반복돼 왔다. 이 과정에서 연예계의 후진적 관행이 세상에 알려지고 바로잡히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게 2009년 동방신기 멤버 김재중, 김준수, 박유천이 무려 13년에 달하는 전속 계약 기간이 불공정하다며 반기를 든 사례다. 여기서 촉발된 ‘노예 계약 논란’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약 기간 7년의 표준 전속 계약서를 만드는 계기가 됐고, K팝 산업의 구조를 적잖이 바꿔놨다. 이후 딱 7년 활동하고 해체하는 아이돌이 많아진 게 이것 때문이다.
뉴진스 분쟁은 다른 의미에서 업계에 굵직한 선례를 남겼다. ‘신뢰 관계 파탄’이라는 막연한 사유로 마음대로 계약을 깰 수 없다는 점을 법원이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다. 뉴진스는 계약 종료를 스스로 선언한 이후 라이브 방송과 기자회견을 통해 장외 여론전을 펼쳐 왔다. 타임지 인터뷰에서는 자신들을 부조리한 한국 사회와 싸우는 혁명가로 묘사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와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회사 직원들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고, “무시해”라는 얘기를 들었고, 존중받지 못하고 비교를 당했다는 등등의 설움을 털어놨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냉정했다. “아티스트와 소속사 간 의견 대립은 활동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추상적인 이유로 계약을 일방 해지할 수 있게 한다면 엔터테인먼트산업의 기본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고 봤다.
막강한 글로벌 팬덤에 기댄 뉴진스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숱한 전속 계약 분쟁을 목격한 팬들은 이제 무조건 스타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피프티피프티 등의 사건을 거치면서 탬퍼링(소속 연예인을 빼가려는 시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립 기어를 놓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시시비비를 가려내는 수준이 됐다. 더구나 뉴진스는 군소 연예기획사의 일명 ‘중소돌’과는 출발점 자체가 달랐다. 방시혁의 자본력과 민희진의 이름값에 힘입어 스타덤에 먼저 오른 채 데뷔한 축복 받은 신인이었다. 국감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뉴진스에게서 왠지 거리감을 느꼈다는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다. 평범한 아르바이트생과 직장인은 그런 사연으로 국회에 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K팝 시장은 연예인이 13년 노예로 묶여 정산도 제대로 못 받고 끌려다니던 과거의 주먹구구식 판은 아니다. 투자은행(IB) 출신의 고급 인력이 포진해 주식시장에서 자본을 조달받고 굿즈, 플랫폼 등 온갖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 팬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해외 시장이 커지면서 조금만 유명해져도 어마어마한 부와 명성을 거머쥘 수 있게 됐다. 뉴진스 역시 소속사는 210억원을 투자했고, 멤버들은 100억원 이상을 정산받았다. 그렇게 달라진 지위에 걸맞게 성실과 신의를 다하는 모습도 보이라는 게 요즘 팬들의 눈높이라는 점을 뉴진스 소동이 확인시켜줬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이들에게는 표준 계약서에 따라 2029년까지 전속 계약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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