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몸피를 벗어나려는 여성…절박함에 공감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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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치유의 빛’을 낸 강화길 소설가 인터뷰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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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은 이미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위장과 자궁, 혈관과 항문까지 번져가고 있어.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몰아낼 수 있지? 어떻게 해야 해? 또 약을 먹어야 할까.”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환각에 빠진 여성이 있다. 37살 박지수. 그가 삼킨 건 나비 날개를 닮은 다이어트약 펜터민. 일명 ‘나비약’이다. 타고난 몸피를 벗어나려는 발버둥과 악다구니.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신간 장편소설 ‘치유의 빛’(은행나무)을 펴낸 강화길 작가(39)를 24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났다. 가부장제 부조리를 그린 ‘음복’(飮福)으로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는 등 한국적 여성서사를 꾸준히 선보여온 작가다. 강 작가는 “이전에 쓴 작품들도 ‘적나라하다’ ‘강렬하다’는 평가를 받은 편인데 더 나가고 싶었다”며 “지금까지 들어갔던 것보다 더 들어가서 더 깊은 어둠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한계선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작고 마른 몸으로 존재감 없던 15살 박지수는 어느 날 살이 붙더니 급속도로 거대해졌다. 이후 거식과 폭식을 반복하며 176㎝ 키에 50㎏ 체중을 유지하는 게 그의 유일한 관심사다. 강 작가는 “‘왜 저렇게까지 해?’라는 질문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며 “지수의 절박함은 절대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고통을 해결하고 싶어서 애쓰는데 보편적인 방법들이 자신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 절망감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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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더, 더’ 들어가려 했다는 말마따나 작가는 집요하게 강박을 묘사한다. 체중 때문에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경험까지 가진 주인공은 내내 자기 몸을 없애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그는 “지수가 조금 빗나간 행동을 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게 인물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따라가는 것”이라 설명했다.

외모 강박에 시달리던 지수는 어느 날부터 오른쪽 날개뼈 아래쪽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통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다. 마침 부위도 ‘날개’여서 환상통을 의심하게 한다. “통증을 날개뼈 아래로 설정한 것도 손이 잘 닿지 않는, 거울로 보려 해도 잘 안 보이는, 누군가 봐줘야만 하는 위치이기 때문이에요. 본 사람들은 말하겠죠. ‘아무 이상 없는데?’”

강 작가는 “루키즘(Lookism·외모지상주의) 강박이 점점 강화되고 세분화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돌들 너무 아름답죠. 하지만 아이돌 역시 산업이라는 것, 전문가들이 정교하게 계산하고 자금을 투입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어차피 모두에게 이해받을 순 없어요. 누군가 지수의 절박함에 공명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다 좋아하는 건, 특히나 제 소설이 그러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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