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인천 물류센터 화재]
인천 서해구, 붕괴 가능성에 대피령… 화재 당시 직원 121명 모두 대피
국가소방동원령에도 불길 안잡혀… 소방관 등 721명-장비 228대 투입
3단 선반위 가연성 물품이 불 키워… “물류센터 소방설비 설치 강화를”
19일 소방 당국이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32물류센터 6층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전날 오전 6시 54분경 화재 신고를 접수한 뒤 곧바로 진화에 나섰지만 한 층에 3단 선반에 가연성 생활용품이 대량으로 쌓인 탓에 불길과 연기가 거세 국가소방동원령에도 불구하고 이틀째 화재를 진화 중이다. 서해구는 건물 붕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날 오후 11시를 기해 물류센터 반경 116m 지역에 대피령을 내렸다. 인천=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18일 인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이틀째 진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화재로 인한 건물 붕괴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인근 지역에는 대피령이 내려졌다. 축구장 42개 넓이인 물류센터에는 가연성 생활용품이 가득 쌓여 불길이 거세고, 내부 구조물 균열 우려 등으로 소방대원이 건물 진입에 난항을 겪고 있다. 화재 당시 건물에 있던 직원 등 121명은 신속히 대피했지만 소방관 2명은 각각 연기 흡입과 탈진 증상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 화재 발생 40시간 만에 반경 116m 대피령
19일 오후 인천 서구 석남동 쿠팡32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화재로 붕괴 우려가 제기되면서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인천 서해구는 19일 오후 11시에 석남동 쿠팡32물류센터의 램프구역 구조물 반경 116m를 대상으로 “주변 상가 및 사무실의 구민들은 즉시 대피하라”는 대피령을 내렸다. 램프구역은 불이 난 물류센터로 화물차가 드나드는 구조물이다. 앞서 이날 오후 열린 관계기관 회의에서는 화재로 인한 램프구역 붕괴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에 서해구는 대피령을 내렸다.이번 화재는 전날 오전 6시 54분경 물류센터 6층에서 발생했다. 2023년 준공된 이 물류센터는 지상 8층, 연면적 29만9000㎡ 규모로 같은 높이의 램프 건물과 연결된 구조다.
불길이 확산되자 소방 당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대용량 포방사 시스템과 헬기 등을 포함한 장비 228대와 소방관, 경찰관 등 721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국가소방동원령에 따라 서울, 경기 등 인근 8개 광역시도에서 인력과 장비가 동원됐지만 주불은 잡히지 않았다.
18일 오전 6시 54분경 첫 화재 신고가 접수된 후 발화 지점인 6층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는 모습. 뉴스1
소방 당국은 “3단 선반 구조인 데다 가연성 물질인 생활용품이 쌓여 있는 탓에 열기가 강하고 연기가 짙어 내부로 진입해 진화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소방 당국은 이날 오후부터 램프 구역에 굴착기 등을 투입해 6층과 연결되는 지점을 부수고, 고가 사다리차 등으로 외벽을 깨 연기를 빼내면서 물을 뿌릴 공간을 확보했다. 이 물류센터에는 총 20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주·야간 근무자 교대 시점에 불이 발생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이틀 넘게 화재가 이어지면서 인근 주민들의 피해는 커지고 있다. 건물에서 치솟은 검은 연기와 재는 서해구 지역은 물론이고 10km 이상 떨어진 인천 계양구와 부평구 지역까지 날아가 이 지역 주민들은 창문을 닫고 생활해야 했다. 연기 피해 등으로 석남동 주민 70여 명은 인근 초등학교에 차려진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서해구는 화재 현장 인근에 있는 어린이집 31곳에 20일 휴원을 권고했고, 인근 초등학교도 하루 휴교하기로 했다. 또 소방 당국은 물류센터와 50m 정도 떨어진 SK인천석유화학 정유공장에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소방차 1대를 배치했다.
● ‘3m마다 설치’ 스프링클러, 제 역할 했나
19일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32물류센터에 불이 나 검은 연기가 일대를 덮었다. 화재가 난 물류센터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약 50m 떨어진 SK인천석유화학 정유공장에도 만일을 대비해 소방차가 배치돼 있다. 인천=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소방 당국은 불을 끄는 대로 현장 감식과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통해 발화 지점과 화재 원인, 스프링클러·화재경보기의 설치와 작동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현행 ‘창고시설의 화재안전성능기준’에 따르면 랙(선반)식 창고는 일정 높이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소방 당국은 “불이 난 물류센터의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분사된 사실은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높게 쌓인 적재물에 가려 분사된 물이 역할을 못 했을 가능성도 있다.
소방관 1명이 숨진 2021년 6월 경기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에서도 스프링클러가 초기 8분간 작동하지 않아 불이 커졌고, 대량의 가연물과 복잡한 내부 구조 탓에 완전 진화까지 엿새가 걸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지회는 “쿠팡이 비용 절감을 위해 화재에 취약하고 초기 진화가 어려운 중층 구조를 활용했다”며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대책은커녕 로켓배송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인근 물류센터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했다는 제보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화재에 취약한 물류센터 구조를 보완할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연물이 가득 쌓인 물류센터에서 불이 나면 진압까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어 단위 면적당 가연성 물질의 양을 뜻하는 ‘화재 하중’이 클수록 소방 시설 설치를 강화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류센터 내 가연성 물질에 대한 기준을 강화해 선반마다 스프링클러를 촘촘히 설치하게 하고, 웨어러블(착용형) 로봇 투입 등 진압장비 첨단화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화재 진화 상황을 보고받고 “무엇보다 현장 소방대원의 안전조치에 철저를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정종철 쿠팡 대표는 입장문에서 “관계 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