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국발 관세 후폭풍에 고사위기 몰린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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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미국발 관세 후폭풍에 고사위기 몰린 중기

얼마 전 알루미늄박을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의 임원에게 연락이 왔다. 미국의 관세 부과 여파로 10여년 간 거래해 온 미국 바이어와의 관계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미국이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시장이지만 오락가락한 관세 정책 때문에 현지 바이어들도 거래 재개를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회사처럼 국내 알루미늄박업계는 고율 관세 후폭풍으로 수출 길이 끊겨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했다. 값싼 수입 제품에 대응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취지였다. 지난 4일엔 관세율을 두 배인 50%로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철강산업을 더 탄탄하게 할 것”이라며 쐐기를 박았다.

미증유의 상황인 탓에 대기업들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롯데알미늄 관계자는 “수출 비중의 70~80%에 달하는 미국 시장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면서 공장 가동 시간을 대폭 줄이는 형태로 제품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며 “대응책이 없어 그 어느 때보다 상황이 어렵다”고 우려했다.

중소 알루미늄박 기업 피해는 더 심각하다. 2차전지에 들어가는 산업용 알루미늄박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대기업과 달리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급처가 마땅치 않아서다. 식품과 약재 포장지로 쓰이는 생활용 알루미늄박 시장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산에 국내 시장까지 내준 지 오래다.

관세율이 같은 철강산업보다 알루미늄업계의 중기 비율이 높아 타격이 더 크다는 게 알루미늄 회사들의 설명이다. 한 중소 알루미늄박 생산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미국 시장에 수출하거나 중국에 반감을 가진 국가를 찾아 거래를 트면서 겨우 연명해 왔는데 미국은 고율 관세로 수출이 힘들어지고 다른 국가에선 중국이 더 싼 가격으로 치고 들어와 설 자리가 없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시장에선 1%포인트의 관세율 때문에 하루아침에 거래가 끊기기도 한다. 미국 바이어는 관세율이 조금이라도 낮은 국가의 기업을 찾으면 거래처를 바꾸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 여파로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최근 대미 알루미늄 수출량이 예년의 10% 이하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기는 버티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고 토로한다. 20일이면 미국이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관세를 부과한 지 100일이 된다. 중기 연쇄 부도가 일어나기 전에 정부는 하루빨리 관세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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