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획소송'에 두 번 우는 상가분양 계약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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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기획소송'에 두 번 우는 상가분양 계약자들

“멀쩡했던 인생이 기획소송 몇 년 만에 신용불량 딱지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누가 소송을 시작했겠습니까.”

분양계약 취소 집단소송에 참여했다가 최근 패소했다는 한 계약자의 말이다. 유명 로펌이 제안한 기획소송에는 수백 명이 참여했다. 로펌이 제작한 유튜브 영상에 소송으로 계약을 취소하고 위로금도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100% 승소’란 말에 현혹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송 후 남은 것은 10억원에 달하는 잔금과 연체료, 소송비용 청구서뿐이다.

계속된 부동산 경기 침체에 전국에서 상가와 오피스텔, 생활숙박시설(레지던스) 분양 계약을 해지하려는 소송이 빗발치고 있다. 이런 집단소송은 대부분 중소형 로펌 주도로 이뤄진다.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로펌이 계약자를 설득해 소송을 진행한다.

판결이 계약자의 패소로 끝나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간 내지 않은 중도금과 잔금도 한꺼번에 내야 한다. 기존에 낸 계약금도 연 12% 수준의 중도금과 잔금 연체료를 감안하면 사실상 남아나지 않는다. 손해가 큰 계약자에겐 로펌이 개인회생·파산을 권유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소송 참여 계약자만 파산하고 로펌은 수수료를 더 챙기는 것이다.

소송 상대인 시행사도 피해가 막심하다. 경기 시흥시 거북섬에 있는 400여 실 규모의 복합쇼핑몰은 계약자 99명이 참여한 1·2차 분양계약 소송 1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그러나 시행사는 늦어진 개점에 늘어난 소송 비용까지 더해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시행사 대표는 “로펌이 각종 추가 소송으로 시간을 끌면서 시장을 죽이고 있다”며 “시행사와 시공사, 계약자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판례를 살펴보면 중대한 하자나 설계 변경 등의 사유가 없는 한 법원은 분양계약 해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부 중대한 하자가 인정돼 계약자가 승소하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 합의 수준에서 마무리된다. 시행사가 사업 지연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소송 전에 합의금을 제공하는 이유다.

업계에선 이런 관행이 부동산 기획소송이 성행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로펌이 계약자를 부추겨 집단소송을 진행하면 대부분 합의금을 받고 이 과정에서 로펌 수익이 불어난다는 설명이다. 계약자가 피해를 보더라도 로펌은 여전히 이익을 얻는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계약자가 쥐고 있다. 허위 광고나 중대한 하자인 경우엔 당연히 계약을 해제할 권리가 있다. 다만 그런 중대 사유가 아니라면 법을 통해 이뤄지는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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