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모터쇼는 미래 기술을 담은 콘셉트카의 무대였다.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장 팔 차가 전면에 선다. 신차도, 새로운 기술도 내세울 것 없는 업체라면 참가 명분은 갈수록 희미해진다. 비용 부담도 이유겠지만, 결국 보여줄 밑천이 바닥나면 모터쇼는 가장 먼저 포기하는 무대가 된다.
반면 BYD는 먹거리가 다양하다. 앞으로 한국 시장에 선보일 차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번 부산모빌리티쇼에서도 순수 전기차만 고집하지 않았다. 대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전면에 내세웠다. 국내 시장에서는 사실상 사라진 대중형 PHEV를 들고나온 것만으로도 관심이 자연스럽게 쏠렸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은 품질이다. 한국 소비자에게 중국 브랜드의 가장 높은 장벽은 여전히 내구성과 품질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이다. 특히 PHEV는 전기 시스템뿐 아니라 내연기관까지 함께 검증받아야 하는 만큼 소비자들의 시선은 더욱 까다롭다.부산서 만난 류쉐량 BYD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 부총재에게 가장 먼저 던진 질문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장거리 주행에서 내연기관의 신뢰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류 부총재는 “DM-i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수백만 대가 판매되며 내구성과 성능을 검증받았다”며 “한국에서도 소비자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시승 행사와 연비 챌린지 등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BYD가 품질 논란을 말로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직접 타보고 판단해 달라는 전략이다. 전국 시승 행사 확대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없다면 선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순간 역설적인 장면이 스쳤다. 과거 품질과 기술력을 의심받던 중국 업체들은 전기차는 물론, PHEV 등 제품군을 다양하게 확대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 경쟁력을 갖췄지만 이 시장에서 발을 뺀 지 오래다. 지난 2021년 니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마지막이다. 정부 보조금 중단과 제한적인 수요를 이유로 대부분 단종 수순을 밟았다.중국 업체들은 이미 PHEV를 넘어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까지 빠르게 상용화하고 있다. 리오토와 BYD 등은 1000~1400km 수준의 주행거리를 앞세워 글로벌 EREV 시장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2027년 이후 1000km 이상 주행 가능한 EREV 출시를 예고했지만, 시장 선점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한발 앞선 것이 사실이다.초창기 국산 PHEV는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전기 주행거리가 짧아 활용성이 떨어졌고, 가격도 높았다. 하지만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최근에는 전기만으로 100km 안팎을 달릴 수 있는 모델까지 등장했다. 고유가와 충전 인프라 부족이 이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출퇴근은 전기로, 장거리는 엔진으로 해결하는 PHEV는 여전히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기와 하이브리드 사이에서 또 다른 친환경차 선택지를 찾는 소비자는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시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보다 다양한 전동화 제품군을 갖추는 전략을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PHEV 기술력이 뒤처지는 게 아니라면.
소비자 선택권 확장은 미래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중국 업체들이 빈틈을 파고드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시장을 비워두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볼 시점이다. 결국 경쟁력은 기술만이 아니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 폭에서 결정된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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