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꿈 꺾였다고 멈출수야” 희망을 겨눈 총잡이

19 hours ago 4

장애인 사격선수 유연수의 도전
프로축구 제주 골키퍼로 활약… 음주차량에 치여 하반신 마비
절망 딛고 사격으로 꿈 키워… “새로운 도전의 아이콘 되겠다”

유연수(27)에게 2022년 10월 18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프로축구 K리그1(1부 리그) 제주의 골키퍼이던 유연수는 이날 아침 음주운전 차량과 부딪쳐 하반신이 마비됐다. 전도유망한 프로 3년 차 선수였던 그는 꿈을 펼칠 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날개가 꺾이고 말았다. 1년간 재활에 몰두했지만 2023년 11월 결국 은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연수는 “다리를 잃은 것보다 더 이상 축구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사고 이전에 프로축구 K리그1 제주에서 골키퍼로 활약하던 유연수.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사고 이전에 프로축구 K리그1 제주에서 골키퍼로 활약하던 유연수.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렇다고 운동선수의 꿈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축구는 아니라도 어떤 종목이건 운동과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사고 후 재활을 하면서 팔로 움직이는 자전거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유산소 기구 등을 통해 계속 체력 훈련을 했다. 그는 “작년 8월 열린 파리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을 보고 큰 깨달음이 있었다. 불편한 신체 조건에서도 손의 미세한 감각에 의지해 운동을 하는 ‘보치아’(뇌병변 장애 또는 그에 준하는 운동성 장애를 가진 선수가 참가하는 패럴림픽 구기 종목) 선수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며 “‘나는 저분들보다 신체 조건이 나은데 못 할 이유가 없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종목이든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장애인 사격이었다. 장성원 BDH파라스 감독과의 만남이 그를 사격의 길로 이끌었다. 장 감독은 유연수에게 “네가 불편한 몸을 갖게 됐지만 조금이라도 행복하고 재밌게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국가대표가 되지 않아도 좋다. 우리 팀에서 재밌게 운동하면서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게 내 목표이자 꿈이다”라고 말했다. 유연수는 “장 감독님이 내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한평생 사격은 놀이공원에서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감독님과 함께라면 최고가 아니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사격에 도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22년 10월 18일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하반신 마비가 된 유연수가 지난해 12월 장애인 사격 선수로 변신한 뒤 훈련 중 총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2022년 10월 18일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하반신 마비가 된 유연수가 지난해 12월 장애인 사격 선수로 변신한 뒤 훈련 중 총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유연수는 지난해 12월부터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에 ‘꿈나무’ 자격으로 입소했다. 2주 뒤에는 현 소속팀인 BDH파라스에 입단했다. 유연수는 “어떤 운동이든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 자세와 호흡 등 총을 컨트롤할 수 있는 기본기 훈련에 집중했다”며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 재미없고 지루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중을 위해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더 노력했다”고 말했다.

4개월간 기본기를 다진 유연수는 17일 창원국제사격장에서 열린 2025년 대한장애인사격연맹회장기 전국장애인사격대회 SH1 공기소총입사 R1 종목에 출전해 14명 중 14위를 했다. 성적으로는 최하위였지만 장애인 사격 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딘 ‘의미 있는 꼴찌’였다.

유연수는 “언젠가 패럴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는 게 최고의 목표다. 그 목표는 내가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더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장애로 꿈을 잃지 않고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내 모습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20일은 제45회 장애인의 날이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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