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쏘리.(I'm Sorry·미안해)"
지난달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엔비디아, 구글, 메타 등 미국 최고의 빅테크 수장들을 만날 때마다 건넸던 말이다. 세계적인 AI 열풍으로 SK하이닉스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자, 물량을 제때 맞추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사과’를 한 것이다.
최 회장은 2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깁스 푼 기념으로 올린다”며 “출장 때마다 빨리 회복하라고 사인해준 친구들 덕분에 기브스와 정이 들었다”고 적었다. 함께 공개된 사진에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등이 최 회장의 왼쪽 손목 붕대에 서명을 남긴 사진이 담겼다.
이 사진들은 최 회장이 지난달 약 보름간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장기 출장에 나섰을 때 촬영됐다. 특히 지난 5일 실리콘밸리 한 식당에서 이뤄진 이른바 ‘치맥 회동’에서도 젠슨 황 CEO는 그의 붕대에 직접 서명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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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는 이번 만남을 단순한 친분 과시를 넘어, AI 시대 핵심 인프라인 메모리 공급망을 둘러싼 물밑 협의의 연장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생성형 AI 확산으로 SK하이닉스의 주력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크게 모자란 데 이어, 범용 메모리인 DDR5 모듈까지 공급 부족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빅테크들이 SK하이닉스에 손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 관계자들이 SK하이닉스 본사가 있는 한국을 찾아와 메모리를 공급 계약을 맺기 위해 줄을 설 만큼 공급 부족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며 "내성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최 회장이 붕대에 사인을 받으며 친분을 쌓을 만큼 행복한 고민에 빠진 상황이지만, 고객사들에 원하는 만큼 물량을 공급할 수 없어 '미안하다'는 뜻을 매번 전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학습을 넘어 추론 단계로 넘어가면서 메모리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고 있다”며 “GPU뿐 아니라 시스템 전반에서 메모리 병목이 부각되면서 빅테크들이 선제적으로 공급망 확보에 나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의 이번 미국 출장은 단순 네트워킹을 넘어 HBM을 축으로 한 ‘AI 메모리 연합’ 구축 행보로 읽힌다. 특히 엔비디아, 메타, 구글 등 주요 고객사들과의 접점을 넓히며 SK하이닉스의 공급 우위를 공고히 하려는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안팎에서는 향후 AI 반도체 시장 주도권이 연산 성능을 넘어 메모리 확보 능력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빅테크와의 밀착 협력을 통해 ‘슈퍼 을(乙)’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해령 기자 hr.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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