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한국 경제에 대한 온갖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내수는 만성적인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미국의 ‘관세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수출도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과 경합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약진은 현기증이 날 정도고 정치적 혼란도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초 주식시장의 출발은 나쁘지 않다. 지난해 말 2400선을 하회한 코스피는 다시 2500대에 근접했고 코스닥지수는 코스피보다 강한 반등세를 나타내고 있다.
펀더멘털 개선에 대한 기대를 반영해 주가가 반등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더 하향 조정될 여지가 크다. 지난해 10월 초 2.2%로 추정된 2025년 GDP 성장률 컨센서스는 최근 1.8%까지 내려왔다. 통상 시장의 기대치보다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던 정부 전망치도 1.8% 성장이다. GDP 구성항목 중 설비투자와 수출에 대한 전망이 추가적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성장률 전망치가 1.5% 내외까지 낮아질 개연성도 높다.
애널리스트들의 상장사 이익 전망치에도 낙관적 편향이 상당히 들어가 있는 것 같다. 2025년 코스피 상장사 영업이익 추정치는 305조원으로 최근 3개월 동안 9.0% 하향 조정됐다. 그러나 2024년 추정치 253조원에 비하면 여전히 20.6%나 늘어날 것이라는 데 컨센서스가 맞춰지고 있다. 올해는 증익이 아니라 감익이 우려된다. 수출 업종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낙관적 컨센서스는 빠르게 현실로 수렴될 것이다.
연초 며칠 동안의 주가 반등에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지만 올해 주식시장은 악재 속에서도 나름 선방하는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작년 코스피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올해의 경기 둔화 가능성을 어느 정도 선반영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개별 종목에 대한 투자는 전혀 다르지만 주가지수의 2년 연속 하락은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코스피가 2년 연속 하락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코스피가 산정되기 시작한 1972년 이후로 살펴보더라도 코스피가 2년 이상 연속으로 하락한 경우는 단 세 차례에 불과했다. 신흥국 외채위기가 있었던 1982~1983년 -7.6%,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 국면에서의 기록적인 주가 급등 직후였던 1990~1991년 -32.8%, IMF 외환위기 국면이었던 1995~1997년 -63.3%였다.
1982~1983년은 2년 연속 조정세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하락률이 7.6%로 2024년의 코스피 하락률 9.6%에도 미치지 못하는 완만한 조정으로 투자자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0~1991년에는 코스피가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이는 한국 증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강세장이었던 1985~1989년 666%나 급등한 데 따른 반작용의 성격이 강했다. 코스피가 유일하게 3년 연속 하락했던 1995~1997년은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쇼크가 발생한 시기였다.
2025년 경기 둔화가 예상되지만 30대 재벌 중 17개가 파산했던 IMF 외환위기 때와 비교할 바는 아니고 1990~1991년의 조정 직전처럼 코스피가 급등한 데 따른 가격 부담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주가지수 2년 연속 하락은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2년 넘게 연속하락한 경우는 1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73~1974년과 IT 버블이 붕괴한 2000~2002년 등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그래도 불안할 수 있다. 올해 한국의 GDP 성장률이 1%대에 머무른다면 역대 여섯 번째로 낮은 성장률이라 작년의 조정이 펀더멘털의 악화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다. 올해 예상 성장률(1.8%)보다 부진한 성장세가 나타났던 과거 다섯 차례의 경우에는 모두 당해연도에 코스피가 상승했다. 1980년(GDP 성장률 -1.4%, 코스피 +6.9%), 1998년(GDP -5.1%, 코스피 +49.5%), 2009년(GDP +0.8%, 코스피 +49.7%), 2020년(GDP -0.8%, 코스피 +30.8%), 2023년(GDP +1.4%, 코스피 +18.7%)이 그랬다.
경기 둔화가 주식시장에 호재였을 리는 없고 주가가 경기둔화를 직전 해에 선반영했기 때문이다. 올해 예상 성장률보다 부진한 성장세가 나타났던 해의 직전년에는 대체로 코스피가 조정세를 나타냈다. 코스피는 1979년 -14.6%, 1997년 -42.2%, 2008년 -40.7%, 2019년 +7.7%, 2022년 -24.9%였다. 이례적으로 2019년 코스피가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2020년의 경기후퇴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악재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주가가 역병의 발생까지 선험적으로 반영할 수는 없다.
올해는 눈에 보이는 펀더멘털의 악화와 상대적으로 견조한 주가 흐름이 공존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경기 침체의 골이 컨센서스보다 훨씬 깊어지고 기업이익의 감소 폭도 시장의 예상보다 크게 나타날 경우 작년에 나타났던 주가 조정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향후 예상되는 펀더멘털의 악화 정도를 계측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2024년 10% 가깝게 코스피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시장이 악재를 어느 정도는 주가에 반영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원화의 강세 반전과 이 과정에서 비달러 자산으로서의 한국 증시의 매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올해 기대할 수 있는 포인트다. 미국 경제는 2023~2024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2년 연속 크게 웃돈 데 따른 역기저 효과와 재정수지 적자 누적 등의 부담에 직면해 있다. 통상 주가의 변동성이 환율의 변동성보다 크기 때문에 주식 투자자들이 통화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포지션을 잡지는 않는다. 다만 최근처럼 일방향의 강달러가 진행되면서 환율이 통상적인 변동 범위를 벗어나 있다면 통화가치의 반전 여부가 자산시장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1440원까지 올랐던 시기가 2022년 9월 말이었다. 이후 4개월여 동안 원·달러 환율은 1220원까지 수직 낙하했다. 같은 기간 동안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 주식을 13조 3000억원어치 순매수했고 코스피는 15.2%나 상승했다. 한국 증시에 여러 가지 약점이 많아 보이지만 올해는 시장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