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현대미술의 중심 중 하나인 영국 런던에서는 지금 한국 작가들의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한국 정부의 지원이 있었던 것도, ‘한국 작가 조명의 해’와 같은 행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세계 미술계에서 잘나가는 미술관과 화랑 관계자들이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인 ‘런던 아트 위크’에 자신들을 대표하는 ‘얼굴’로 한국 작가를 선택한 것이다.
글로벌 명문 화랑인 타데우스로팍의 런던 지점에서 전시를 여는 정희민 작가(38)가 단적인 예다. 타데우스로팍 런던 지점은 런던의 수많은 갤러리 가운데서도 최고의 화랑 중 하나로 꼽힌다. 미술계 관계자는 “10월 초 타데우스로팍의 런던 지점에서 전시를 열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의미이고, 작가에게도 앞으로 큰 ‘스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희민은 설치와 영상, 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로 갤러리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젤을 굳혀 조각처럼 두텁게 쌓아 올린 작품을 눈여겨볼 만하다. 이런 작업을 통해 작가는 동틀 무렵 서울의 풍경, 전통 장례 의식 속 영혼과 환생의 개념 등 한국적인 주제를 다룬다. 그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잠깐 스쳐 가는 미묘한 순간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설치예술가 정금형(44)은 런던현대미술관(ICA)에서, 건축가 조민석(58)은 하이드파크의 미술관인 서펜타인갤러리에서 건축전을 열고 있다. 이은실 작가(41)가 프리즈런던 측에서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은 작품을 보러 온 외국인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서용선 작가(73)의 전시도 크롬웰플레이스에서 선보였다. 박원재 원앤제이갤러리 대표는 “세계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한국을 찾았을 때 서용선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작품이 워낙 강렬해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진가를 잘 알아줄 것 같다’고 말했다”며 “이번에 열린 전시들은 한국 미술의 존재감을 세계에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런던=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