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젤 홍콩 2025 개막
최고가는 구사마 야요이 51억
작년 쿠닝 가격 절반 못 미쳐
경기 불확실성 큰 상황에도
중국 컬렉터들 구매 줄이어
수천·수억원대 작품 잘 팔려
한국 갤러리·젊은 작가들 선전
홍콩섬 북부 빅토리아 하버의 진청색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홍콩컨벤션센터. 이곳에서 1조원 규모가 거래되는 아시아 미술품 유통의 핵(核) '아트바젤 홍콩 2025'가 개막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경기침체 위기로 미술품 투자가치가 예전만 못하다곤 하지만 26일(현지시간) 찾은 '아트바젤 홍콩 2025' 현장은 인산인해였다. 컨벤션센터 2개 층(1·3층)을 둘러보는 내내 관람객끼리 어깨가 부딪칠 정도였다.
이번에 42개국 갤러리 240곳이 부스를 채워 작년(243곳)과 엇비슷했고, 보수적 가격대 작품 구성을 통해 내실을 꾀한 결과 준수한 판매 실적을 거뒀다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현장 관계자들과 외신에 따르면 이번 아트바젤 홍콩의 최고가액 주인공은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로,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를 통해 판매된 2013년 '무한 그물[ORUPX]' 가격이 350만달러(약 51억원)였다. 작년 아트바젤 홍콩에서 최고가액으로 판매된 빌럼 더코닝의 '무제' 가격인 900만달러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날 정오 VIP 프리뷰 개막 직후 꼬박 8시간 부스를 지킨 갤러리 운영자들은 "선(先)판매와 현장 실적이 나쁘지 않아 정점은 아닐지언정 상당 수준 회복했다"며 "대형 갤러리들의 특수한 흥행보다 주요 갤러리들이 상대적 저가 작품을 통해 내실을 챙겼다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각 갤러리와 아트바젤이 갈수록 매력도가 떨어지는 홍콩에서 실리를 챙기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의미가 된다. 접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도록 문턱을 낮춘 것"이라고도 평했다.
프리뷰 첫날 두 번째 최상위 가격을 기록한 작품은 갤러리 하우저앤워스가 판매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Cove'로 200만달러였다. 최근 하우저앤워스와 전속 계약한 한국의 이불 작가의 작품 2점도 이날 새 주인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이불의 '무제(Anagram Leather #11 T.O.T.)'가 27만5000달러, 올해 최신작인 'Perdu CCIX'는 26만달러를 기록했다.
가고시안은 구체적 판매가액은 함구했으나 캐럴 보브, 사라 제, 안나 웨이언트, 무라카미 다카시, 쩡판즈 등의 작품들이 대거 판매돼 사실상 부스에 소개된 작품을 거의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만머핀에선 세실리아 비큐냐, 데이비드 살레, 안나 박 등의 작품이 새로운 거처를 찾았다.
뉴욕과 브뤼셀에 지점을 둔 해외 갤러리 관계자는 "올해 아트바젤 홍콩은 일요일인 30일까지 진행되기에 더 지켜봐야겠지만 실적이 나쁘지 않았다"며 "중국 경기침체 가능성으로 컬렉터들이 지갑을 닫으리란 우려가 있었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중국인 문의가 많았던 점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날 VIP 프리뷰 직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심화하고 국내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중국 본토의 컬렉터들은 경제적 역풍,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미술품을 구매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SCMP에 따르면 데이비드 즈워너는 미셸 보레만스의 3m짜리 유화 'Bob'을 160만달러에 중국 비영리단체 코리더재단에 팔았다.
타데우스 로팍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작품을 129만달러에 판매했다. 글래드스톤은 아니카 이의 조각 'Thorn'을 22만5000달러, 앨릭스 카츠의 'Study for Summer 13'을 11만달러, 우고 론디노네의 수채화 6점을 각 5만달러에 판매해 호조세였다. 화이트큐브는 앤터니 곰리의 작품을 64만달러에 판매했다.
아트바젤 홍콩에 참가한 한국 갤러리 9곳도 대부분 선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갤러리는 박서보 '묘법 No.040516'를 54만달러, 하종현 '접합 22-03'를 39만달러에 판매했다. 학고재 갤러리는 송현숙 '8획'(7만1000달러), 정영주 '산동네 203'(6만3000달러)과 '저녁 122'(4만4500달러), 윤석남의 작품 등을 판매했다. 특히 배우 하정우의 회화 '무제'도 4만5600달러에 예약됐다.
현장서 만난 우찬규 학고재 회장은 "부스 전체의 작품 수준이 작년보다 올해가 좋아 보였다. 전 세계 경기가 불황기임을 고려할 때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갤러리도 눈에 띈다"고 강조했다. 조현화랑은 조종성, 김홍주, 권대섭, 박서보 각 1점, 이배 8점, 강강훈 2점, 안지산 2점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준수한 성적표를 손에 쥐었지만 미술시장이 샴페인 뚜껑을 따기엔 시기상조란 자조도 나온다. 글로벌 아트페어에선 초고가 작품 판매가 확정되면 갤러리 운영자들이 부스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자축하는데, 올해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게 미술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젊은 한국 작가들의 약진이 확인됐다.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프라이즈의 최종 후보 3인에 한국 작가 신민이 포함됐다. 아트바젤 측은 행사 전날 보도자료에서 "놓쳐선 안 될 8가지 프로젝트"라고 칭하며 8인 중 4번째 작가로 소개했다.
아트바젤 홍콩에서 300m 거리에서 열린 위성 전시인 '아트센트럴 2025'에선 전날 '완판'한 한국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아틀리에 아키 갤러리의 권능 작가 작품 4점이 모두 팔려 눈길을 끌었고, 한충석, 김관영, 강신덕 작가의 작품 표식에도 '판매 완료'를 뜻하는 붉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흥행 이면에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홍콩의 중국화(化)로 예년에 비해 매력이 낮아졌고 특히 올해 아트바젤은 본 전시 외에 볼 만한 주변 전시가 없다는 평가가 돌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며 "방문객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참여 갤러리 입장에선 과거 최정점 시절에 비해선 모객 수준이 저조했다"고 냉정하게 일갈했다.
[홍콩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