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결핍, 때론 희망 틔우는 씨앗 때론 삶의 원동력”

4 days ago 7

‘이제야 보이네’ 재출간한 김창완
“옛 원고 정리하다 다시 만난 청춘
자신을 가두거나 포기하면 곤란
허탈감-불안도 일상 속 아름다움”

21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가수 김창완이 30년 전 펴낸 첫 산문집을 개정한 책 ‘이제야 보이네’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청년들이 꼽는 ‘닮고 싶은 어른’ 중 한 명인 그는 “청년의 결핍도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1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가수 김창완이 30년 전 펴낸 첫 산문집을 개정한 책 ‘이제야 보이네’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청년들이 꼽는 ‘닮고 싶은 어른’ 중 한 명인 그는 “청년의 결핍도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오래된 옛얘기겠지 했는데…, 나도 잊고 지내던 ‘청춘’을 동네 카페에서 마주한 느낌이에요.”

가수 김창완(71)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글’로 표현하며 생애를 지내 왔다. 1977년 전설적인 록밴드 ‘산울림’으로 데뷔한 뒤 48년 동안 싱어송라이터로서 노랫말을 지어 왔다. 30여 년간 라디오 진행의 오프닝 원고도 항상 직접 썼다. 201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처럼, 김창완 역시 음악과 함께 글로 다진 길에서 우리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온 예술가다.

19일 출간한 책 ‘이제야 보이네’(다산북스)는 1995년 그가 썼던 첫 산문집을 다시 다듬고 손봐서 내놓은 결과물이다. 딱 30년 만에 새로 단장한 산문집을 핑계로 21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낮술 한잔’을 청해봤다.

● “남루한 노래도 남루하지 않게”

이번 산문집은 원래 ‘집에 가는 길’(문예마당)이란 제목으로 출간됐었다. 이후 2005년 ‘이제야 보이네’(황소자리)로 개정판을 냈고, 다시 20년 만에 새 글 8편과 그림 20점을 더해 펴냈다. 30년의 세월을 관통한 산문집은 취업을 걱정하던 청춘기부터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장년기까지 일상에서 느낀 삶의 소중함이 오롯이 담겼다.

“예전 원고들을 정리하다 보니 지나온 청춘이 선명하게 떠올랐어요. 나도 까맣게 잊고 있던 옛 모습을 다시 알게 돼 반가웠죠, 하하.”

가수와 배우 등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는 김창완은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닮고 싶은 어른’ 중 한 명으로 자주 거론된다. 2023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69세 가수의 깊은 내공에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지난해 책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도 “매일 만들어지는 불완전한 동그라미 같은 하루도 아름답다”며 청춘을 위로했다.“그렇게 불린다고 해서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에요. 다만 할 수 있는 위로를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는 “위로와 격려에 목말라 있는 청춘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그들의 결핍이 때론 희망의 씨앗이 되고, 인간의 근본을 파고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개정판에 새로 실린 시 ‘내 노래’를 보면, 반세기를 가수로 살아온 그의 음악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하다. ‘50년 동안 부른 남루한 노래/소매가 나달나달하고 단추가 떨어지고 … 그걸로 애도 키우고/그걸로 봉양도 하던/남의 얘기 같은 내 노래.’

김창완은 “내 옛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가끔 ‘이미 남루해진 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그 노래를 남루하지 않게 부르려고 하는 데 의미가 있지 않겠냐”고 했다.

● “불안도 허탈함도 아름다울 수 있어”

이번 산문집에선 그간 김창완이 좀처럼 내보이지 않았던 ‘연한 속살’도 드러난다. 30년 가까이 투병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나 2008년 세상을 떠난 막냇동생(김창익)을 잃은 상실의 아픔도 배어 있다.

뭣보다 그의 노랫말처럼, 책은 일상 속의 먹먹한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해 냈다.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은 뒤 빨리 일어서는 무뚝뚝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긴 이별 앞에 있는 사람처럼’ 이것저것 묻는다. 그는 “길고 긴 인생에서 짜장면 한 그릇의 순간. 이 짧은 순간이나마 몇 번이나 될지”라며 그 시간을 회상한다.

“90세가 된 어머니를 보면 지금도 예뻐요. 공연도 보러 오실 정도로 건강하시니까 항상 고맙고 장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김창완은 오래된 원고 속에서 흘러가 버린 삶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다가올 일상에 더 많은 의미를 둔다. 그는 “책에 있는 것은 내가 지나온 흔적일 뿐”이라며 “책 바깥에 있는 나의 부끄러움, 두려움, 근면과 목마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떠올렸다.

“삶의 방향성을 잃었다면 ‘일상 속 아름다움’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며 자신을 가두거나, ‘나는 안 맞아’라며 미리 포기할 필요 없어요. 허탈함 속의 나를 발견하거나 괜한 불안을 느끼는 것도 일상 속 아름다움 아닐까요.”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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