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작품부터 최신 자화상까지…호크니 70년 예술史, 파리 수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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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불로뉴 숲 아클리마타시옹공원에 자리한 루이비통재단미술관은 지금 '현대미술의 전설' 데이비드 호크니의 70년 인생을 담은 '데이비드 호크니 25' 전시로 연일 붐빈다. 4월 9일 개막해 오는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 호크니의 친구인 건축 거장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공간 속 11개 갤러리를 모두 할애한 전례 없는 규모다. '데이비드 호크니 25'는 195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400여 점의 엄선된 작품을 선보인다.

첫 작품부터 최신 자화상까지…호크니 70년 예술史, 파리 수놓다

호크니의 성장 궤적

영국 웨스트요크셔의 산업도시, 브래드퍼드의 전후 풍경에서 성장한 호크니의 예술적 삶은 1959년 런던 왕립예술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의 초기 작품은 마치 그라피티를 연상시키듯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매력을 발산한다. 전시는 연못 층 2번 갤러리에서 막을 올린다. 첫 판매작이자 따뜻한 시선이 담긴 ‘아버지의 초상(Portrait of My Father)’(1955)은 앞으로 펼쳐질 광활한 연대기적 탐구의 시작을 알린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1972).   ⓒ 루이비통 재단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1972). ⓒ 루이비통 재단

호크니는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한다. 이는 중대한 변환의 기폭제가 됐다. 향락주의적 무드와 강렬한 햇살,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며 그는 복잡한 구성을 해체하고, 전에 없던 대담한 색채와 단순화된 평면을 채택했다. 때로는 사진적인 시각성을 가미하기도 했다.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1967)과 ‘더블 포트레이트(Double Portrait)’ 연작은 이런 양식적 변모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자연은 점차 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60개의 캔버스에 걸쳐 가로 길이가 7m가 넘는 웅장한 파노라마 ‘더 큰 그랜드캐니언(A Bigger Grand Canyon)’(1998)은 대표적인 증거다.

요크셔, 익숙함의 재발견

데이비드 호크니의 ‘자화상’ (2012).  ⓒ 루이비통 재단

데이비드 호크니의 ‘자화상’ (2012). ⓒ 루이비통 재단

1999년 모친이 별세한 이후 호크니는 익숙한 장소인 요크셔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완만한 들판과 구불거리는 길은 그가 경험한 미국 환경과는 현저히 달랐다. “끊임없이 변하는 풍경의 본질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은 다채로운 시각표현 기법을 실험하는 데 중요한 동인이 된다.

그의 영국 귀환을 환영하며 갤러리 1은 ‘요크셔로 돌아가다(Return to Yorkshire)’를 주제로 구성됐다. 18세기 영국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과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정신을 계승하며 그는 야외로 나갔다. 수채 및 유화 물감, 목탄 회화뿐만 아니라 사진과 디지털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해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자 했다.

호크니의 독보적인 초상화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앞서 부친을 향한 친밀한 묘사는 가족 구성원에서 전담 간호사, 친구, 동료 작가로 이어졌다. 아크릴 회화, 아이패드 드로잉, 나아가 광학 기기인 카메라 루시다를 이용해 다층적 세계를 창조했다.

“얼굴은 가장 인상적인 대상입니다. 이는 타인의 내면으로 통하는 관문이며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드러냅니다.” 그의 말은 갤러리 4를 가득 채운 초상화 60여 점을 이해하는 주요한 단서다. 갤러리 내부, 그리고 다수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푸른색 배경은 초기 캘리포니아 회화와 미묘한 연관성이 있다. 전시는 존재에 관한 대대적인 서사를 지나 아이패드로 그린 15점의 개성 강한 자기표현인 ‘자화상(Self Portraits)’(2012)으로 마무리된다.

노르망디에서 전한 희망의 메시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호크니는 노르망디의 목가적 경관에 푹 빠져 있었다. 글로벌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의 시기에서 그의 아이패드는 지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매개체였다. 당시 그는 노르망디의 변화무쌍한 날들을 꾸준히 기록하며 디지털 연작 220점을 남겼다. ‘2020년을 위한 220(220 for 2020)’이라는 적절한 제목의 이 일련의 작품은 갤러리 5를 장식한다.

‘데이비드 호크니 25’ 전시장 전경. ⓒ 루이비통 재단

‘데이비드 호크니 25’ 전시장 전경. ⓒ 루이비통 재단

아이패드는 그에게 시간을 붙잡고, 반복되는 자연의 면면을 놀라운 속도로 부각하는 강력한 도구가 됐다. 시야를 넓혀 밤의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게 했고, 공간에 최적화된 크기를 원활히 조정하는 유연성도 제공했다. 작가 요청으로 마련된 달의 방(Moon Room)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황금빛에서 차가운 백색으로 변화하는 달빛만이 은은하게 감돈다.

고요한 명상의 여운을 지닌 채 마주하는 갤러리 6은 아크릴 회화 속으로 대중을 인도한다. 늦여름의 사과, 배, 모과나무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반 고흐가 그랬듯 나도 그림을 그릴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갤러리 7에서는 자신이 머물렀던 노르망디 페이 도주 지방의 저택과 주변 풍경을 그린 잉크 드로잉 대작 ‘라 그랑드 쿠르(La Grande Cour)’(2019)를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 9는 호크니의 지적 호기심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며 프라 안젤리코, 클로드 로랭,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같은 선구자와의 조우를 시도한다. 갤러리 10은 ‘호크니, 무대를 그리다’에 맞춰 드라마틱한 다성음악 창작이 울려 퍼진다. 오페라 애호가인 그는 1960년대부터 이미 커튼, 무대 디자인, 화려한 의상의 등장인물들을 그려왔다. 여러 오페라 주요 장면을 융합해 소개한다. 갤러리의 높은 천장고는 몰입감을 증폭시킨다.

극적인 시청각 경험의 절정에서, 마지막 갤러리 11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알려진 것(Less is Known than People Think)’을 주제로 런던에서의 최신작을 공개한다. 에드바르 뭉크와 윌리엄 블레이크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그림들은 다소 심오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 심연의 의미를 탐색하도록 관람객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이와 나란히 놓인 ‘극 속의 극 속의 극 그리고 담배를 든 나(Play within a Play within a Play and Me with a Cigarette)’는 호크니의 친근하면서도 사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자화상이다. 이 작품은 공식 포스터에도 반영됐다.

파리=유승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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