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 ‘SF연극 열풍’ 올해도 이어질 듯
‘전기 없는 마을’ 영상 투사 기법 결합… “작품속 세계관, 시청각 확장 극대화”
‘로켓 캔디’ 장치 줄인 무대서 심리극… “정형화된 기술 탈피, 상상력 더 확장”
지난해 국내 공연계는 다채로운 ‘공상과학(SF) 연극’이 전례 없이 풍성한 해였다. 올해도 여전히 인공지능(AI)이나 기후위기 등이 사회적 화두로 주목받고 있어 SF 연극의 열기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정된 무대라는 물리적 제약이 많은 공연예술에서 SF란 장르가 어떻게 소화되고 있는지 화제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관객 몰입을 돕는 기술 구현
SF 연극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공연과 최신 기술의 마리아주(mariage·결합)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지난해 국립극단 ‘전기 없는 마을’에서 이용한 현대미술 기법인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이 대표적이다. 프로젝션 매핑은 빛으로 이뤄진 영상을 투사해 현실 대상이 다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걸 일컫는다. 가로로 길고 폭이 좁은 무대 벽면에 투사된 영상이 꿈을 꾸는 듯한 느낌도 자아냈다. 일부 장면에선 라이다 센서(LiDAR sensor·레이저 거리 감지 기술)로 배우 움직임을 실시간 계산한 뒤 마치 게임 속 클론처럼 구현했다.국립극단이 이런 기술을 쓴 건 작품의 설정인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형상화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가상의 거대한 시뮬레이션이란 가설이다. 김연민 연출가는 “기술의 원리나 시청각적 효과가 작품 세계관이나 메시지와 연결될 수 있도록 고민했다”고 말했다.
가상현실(VR) 콘텐츠에서 상용화된 입체(3D) 오디오 기술도 도입됐다. 연극 ‘땅 밑에’는 공연장 천장부터 객석 밑까지 스피커 40여 대를 반구 형태로 배치했다. 관객에게 지급된 헤드폰엔 헤드트래커(Head Tracker)를 부착해 음향이 관객의 움직임에 맞춰 바뀌도록 했다. 정혜수 사운드 아티스트는 “가상의 세계관에 대한 몰입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라며 “연극은 이야기 진행 방식이나 극장 특성 등을 고려해 소리 위치와 움직임을 계산하는 세심한 설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부족한 기술이 상상력 자극하기도
SF 연극이지만 의도적으로 아날로그를 강조하는 사례들도 눈에 띈다. 지난해 11월 공연됐던 ‘로켓 캔디’는 오히려 장치를 최소화한 무대에서 심리극에 초점을 맞춰 전개됐다. 인간이 달을 개척하고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2045년이 배경인 작품에서 무대에 등장하는 괴물은 출연진이 몸과 손을 겹쳐 표현했다.같은 달 공연된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은 입체 공간 음향을 사용하되 따뜻함이 강조된 아날로그적 소리를 들려줬다. 별 군락이 우주로 확장되는 이미지를 흩뿌리는 듯한 신시사이저 연주로 표현했다. 우주를 시각화한 별다른 영상물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도는 정형화된 기술을 벗어남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더 확장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로켓 캔디’의 강훈구 연출가는 “기술의 부각은 미래를 표현하는 일차원적 방식에 그친다”며 “SF는 결국 개개인 인식의 문제다. 무대에서 ‘보아뱀’을 보여줄 수 없다면, 모자를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의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도 “SF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었을 때 더 신선함을 느끼고 작품의 메시지를 곱씹게 된다”고 했다.이 때문에 SF 연극에서 기술은 작품의 주제에 맞는 적절한 ‘연출’이 중요하다. KAIST 음악오디오컴퓨팅 연구실의 최재란, 이세인 연구원은 “기술에만 집중한 연출은 공연을 지루하게 만든다”며 “기술이 너무 완벽하게 작동하면 존재감이 전달되지 않는다. 관객에게 존재감을 자연스럽게 인지시키는 연출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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