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주의자들의 실험실 같은 이곳은 거대한 공작기계를 다루는 여성 노동자 셋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시험관 대신 스핀들과 보빈을 다룬다. 실을 뽑고 감고 나른다. 복잡한 각도에서 묘사된 3차원 인물은 공장 장비와 부품을 그래픽으로 명확하게 그린 배경과 대조되어 구성에 특별한 역동성을 부여한다. 맨 앞에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노동자의 눈빛은 진지하고 작업에 매우 집중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육체노동자의 기계적인 그것이 아니다. 그림을 지배하는 아우라는 새로운 노동의 심리학을 대변한다. 자유와 존엄성이 강조되고 거의 영적이기까지 하다.
<섬유 노동자들>(1927)에서 실을 다루는 여성 트로이카의 이미지는 로마 신화에서 운명의 여신 파르카이(Parcae)의 구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파르카이는 인간이나 도시, 국가, 더 나아가 신들에게 닥칠 운명을 결정하는 신들인데, 그중 노나(Nona)는 실을 당겨 생명의 실을 잣고, 데키마(Decima)는 스핀들에 실타래를 감아 운명을 분배하고, 모르타(Morta)는 실을 잘라 생명을 끊는다. 세계의 재편과 새로운 인간의 형성을 꿈꾸던 젊은 국가 소비에트 러시아는 예술가들이 세계에 관한 진보적인 인식을 작품에 반영하길 원했고 화가는 그러한 인간형을 과연 구현해냈다.
거대한 기계, 그 안에서 회전하는 축, 천장과 벽의 가느다란 선들이 큰 창문으로 수렴되며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다. 창문 밖으로는 전 근대의 상징으로 소몰이 소년이 지나가고 근대의 상징으로 번듯한 건물이 서 있다. 즉 어제와 오늘이 저편에 있고 미래는 이편에 있다. 밝은 톤으로 균일하게 비추는 빛은 이 새로운 세계가 얼마나 순수하고 밝고 합리적인지를 강조한다. 스핀들은 화면 앞 허공에 매달려 있고 직조공은 끊어진 실을 묶는다. 이 여성들은 단지 기계적인 과정의 참여자가 아니라 이곳의 주인이며 이곳의 모든 움직임을 창조하고 지시한다. 기계화된 새로운 세계에서 인간의 역할을 그토록 낙관적으로 보았던 이 화가는 알렉산드르 데이네카다.
쿠르스크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데이네카는 강인하고 단순하며 근면한 가족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기대 속에 철도 학교에 입학했으나 그림에 대한 사랑이 강해져 학업을 중단하고 하리코프의 미술 학교에 입학했다. 실망한 아버지는 재정 지원을 끊었다. 그는 전통 회화보다 그래픽에 더 매력을 느꼈는데 당시 유화 물감이 비쌌기에 연필로 작업하는 데 익숙해졌던 탓도 있었다.
전쟁과 혁명의 시대였다. 1917년 2월 혁명 이후 하리코프 예술 학교의 수업은 중단되었다. 그는 밥벌이를 위해 김나지움의 교사로 일했고 극장에서 무대를 디자인했으며 범죄 수사 부서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수많은 전시(戰時) 포스터를 그리며 군 복무를 마친 그는 레닌의 포고령으로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와 스트로가노프 응용 예술 학교가 합병되어 설립된 ‘고등 예술 및 기술 스튜디오(Вхутемас)’에 들어갔고 유명한 그래픽 아티스트 블라디미르 파보르스키의 학생이 되었다. 아방가르드 예술과 건축 운동의 중심지였던 그곳에서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도 만났는데 그의 시로부터 간결함과 명확성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데이네카는 책과 잡지 삽화를 위한 그래픽(오늘날 일러스트와 같은) 분야에서 많은 작업을 했다. 이는 새로운 현대 소비에트 주제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각화하려는 그의 열정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그는 세계를 비유적으로 변형시키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터득했다. <섬유 노동자들>(1927)도 이때의 산물이다. 데이네카는 실제 사물과 사건의 세계에서 분리된 추상적인 창의성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젊은 소비에트 미술에서 기술, 산업의 미적 아름다움을 발견한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서 그의 회화에는 구체적인 사회적 내용이 가득 차 있다.
같은 시기의 대표작인 <페트로그라드 방어>(1928)는 화면을 약간 먼 상부와 한층 가까운 하단으로 구분해 부상병의 귀환과 신병의 행진을 보여준다. 전선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은 꺾였고 끊어졌고 느리다. 전선으로 나가는 병사들은 꼿꼿하고 촘촘하고 빠르다. 이 두 방향으로의 진행은 멀리 떨어진 도시의 파노라마와 함께 밝은 배경에 대비되어 무한히 계속될 행렬을 예감케 한다. 스위스 상징주의 화가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영향으로 개별 요소들을 반복, 병렬하여 장식성이 돋보인다.
1930년대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성기와 일치했다. 정서적 고양, 경쟁과 승리, 스포츠와 노동, 건강한 인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이 소비에트 사회에 퍼져 있었다. 데이네카 자신도 달리기, 수영, 체조, 배구 등을 즐긴 데다가 프로 권투 선수이기까지 했는데 그의 코치가 “우리는 훌륭한 권투 선수를 잃었지만 훌륭한 예술가를 얻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구현해낸 인물들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힘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육체적 아름다움이 고귀함, 높은 도덕적 자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고대 그리스 전통과 맥을 같이했다.
말레비치가 이론의 극점으로 치달아 ‘검은 사각형’을 자신의 이콘으로 삼고 끝내 회화를 부정하고 말 때, 데이네카는 <축구선수>(1932), <골키퍼>(1934) 같은 그림을 자신의 이콘 삼았다. <축구선수>의 배경은 교회다. 그런데 십자가는 없다. 축구선수는 공중에 떠서 둥그런 물체를 차올린다. 공은 해 같기도 하고 달 같기도 하다. 이집트 벽화에서 침묵으로 호령하는 파라오 같다. <골키퍼>가 보여주는 속도감을 보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공을 겨냥하는 골키퍼의 꿈틀거리는 몸이 보인다. 그 시대의 리듬을 반영하는 움직임이다.
그의 작품들은 일면 행복한 소비에트 인민을 ‘의식적으로 보여주는데’ 치중했다고 단순 평가되기 쉽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힘과 에너지 표현에 특히 집중하여 개성을 숨기면서도(개인의 개성은 철저히 무시된다. 전형성이 중요하다) 건강한 삶을 유형화했는데 가장 소비에트적인 작품을 그린 화가로 해외에서도 인기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35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미국-러시아 연구소 등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개인전을 열었고, 미국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미국인들의 삶을 수많은 스케치로 남겼으며 잡지 <베니티 페어> 편집자들로부터 표지 디자인을 의뢰받기도 했다.
미국 외에도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지를 여행했는데, 당시는 대부분의 다른 소련 예술가들에게 여행이 허용되지 않았던 때이니 그의 인기나 영향력을 상상해 봄 직하다. 이때 이탈리아 등지의 고대 예술 표현법에서 받은 영감은 프스코프나 노브고로드 이콘에서 그가 받았던 인상과 결합해 소비에트 식 모자이크로 재탄생했다. 이를 감상하려면 지하철 마야콥스카야역이나 노보쿠즈네츠카야역에서 고개를 젖혀 시선을 위로 두기만 하면 된다.
1944년 작인 <광활한 평원>은 후퇴하는 독일군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대조국전쟁에 앞서 그려졌다. 나치 독일에 대한 곧 다가올 승리를 예감하는 작가의 감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화창한 여름날의 탁 트인 풍경 속에 단련된 신체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하는 색감을 사용해 생동감이 넘친다. 여성 청년들이 아름다운 숲과 들판을 뒤로하고 가파른 둑으로 달려 나간다.
이 그림은 1947년 빈 국제전에서 발표되었다. 이후 국제무대에서 소비에트 예술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인식되었다. ‘뛰는 여성들’을 그린 것은 물론 스포츠에 대한 데이네카 자신의 관심을 반영하고 독일 점령의 종식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를 염두에 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시 여성이 후방의 주요 노동 인구였다는 점, 그러므로 저들의 단단한 근육은 건전한 육체 활동의 결과임이 강조되고 있다. 어두운 톤으로 전쟁의 참상을 그리는데 지친 그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도래를 열망하는 가운데 여성들을 마치 고대 여신들처럼 균형 잡힌 신체에 깃든 조화로운 정신으로 구현했다고도 평가된다.
데이네카는 소비에트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동시에 스스로 표준적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회화적 대변자였기에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소비에트 미술의 얼굴로 불린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태도라기보다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방법론에 동의했으나 장르나 소재의 선택에 있어 자신을 제한하지 않고 책 삽화, 포스터 아트, 유화를 막힘없이 오갔고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역사화를 가리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모자이크로 고대 프레스코화가 지니는 예술 감각을 부활시킨 작가였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