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열리니 울진(蔚珍)이 ‘성큼’[여행스케치]

1 month ago 13

경북 울진군 후포항 일출.

경북 울진군 후포항 일출.

한차례 경매가 지나간 위판장 물기 어린 바닥에 주홍빛 집게다리 하나 뒹군다. 대게잡이 어선에 가득 실려 온 어느 붉은대게(홍게)에서 떨어져 나왔나 보다. 8개 다리 모두 살로 통통하고 꽉 들어찬 내장으로 몸통이 단단한 것들은 이미 상품(上品)으로 팔려 떠났다. 아침 댓바람에 부두로 들어온 배는 두 척뿐. 울진대게를 싣고 오지는 않았다. 7일 경북 울진군 후포항(港). 바람이 거셌다.

경북 울진군 후포항 위판장에서 7일 오전 경매를 위해 붉은대게를 늘어놓고 있다.

경북 울진군 후포항 위판장에서 7일 오전 경매를 위해 붉은대게를 늘어놓고 있다.

● 울진대게 ‘독립선언’

경매는 빨랐다. 배에서 부린 붉은대게들을 중년 여성 두 명이 크기는 어떤지, 얼마나 실한지, 다리는 제대로 달렸는지, 색은 선명한지 등에 따라 5열 종대로 죽 늘어놓는다. 경매사와 중도매인들이 빙 둘러서더니 몇 초 만에 한두 줄씩 흥정을 끝낸다. 다 마치는 데에 1분 안팎. 다음 5열 종대로 이동한다.

울진대게는 과거 영덕대게로 불렸다. 울진 앞바다 대륙붕인 왕돌초(왕돌잠, 왕돌짬) 일대에서 주로 잡지만 내륙에서 거래상들이 오는 게 여의치 않아, 교통이 편리한 영덕군 강구항에서 주로 거래됐기 때문이다. ‘등허리 긁을 때 손 닿지 않는 곳이 울진’이라는 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울진이 ‘명칭 독립’에 나선 것은 1995년 첫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치러지고 나서다. 첫 민간 군수가 대게 논쟁을 일으켰다. 그 결과 울진은 울진대게, 영덕은 영덕대게로 각각 부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자해(紫蟹)는 울진 특산물’ ‘울진은 해포(蟹浦·게의 항구)’ 하는 옛 기록들이 소환됐다. 자해는 말 그대로 붉은빛 도는 게다.

후포항 ‘왕돌회수산’ 삶은 붉은대게와 울진대게.

후포항 ‘왕돌회수산’ 삶은 붉은대게와 울진대게.

28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후포항에서는 2025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가 열린다.

28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후포항에서는 2025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가 열린다.
그렇다고 울진과 영덕이 앙숙이 돼 버리지는 않은 듯하다. 28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후포항에서는 ‘2025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가 열리는데, 대게가 부족하면 영덕대게를 가져다 쓰기도 한단다. 영덕에서 열리는 대게 축제 때도 울진대게 품앗이가 이뤄질 터다.제법 알려지긴 했지만 대게는 ‘큰 게’가 아니다. 다리가 마른 대나무처럼 곧고 마디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홍게가 대게보다 더 붉다. 짠맛이 더 강해 값이 싼 편이란다.

후포항 앞바다에 해가 떠오른다. 붉은 태양과 출어에 나선 통통배, 갓바위 공원에서 뻗어 나간 스카위워크가 삼위일체를 이룬 것 같다.

후포항 앞바다에 해가 떠오른다. 붉은 태양과 출어에 나선 통통배, 갓바위 공원에서 뻗어 나간 스카위워크가 삼위일체를 이룬 것 같다.
경매 전 후포항 동쪽 등기산(해발 64m)에 올랐다. 언덕에 가까운 정상에 1968년 1월부터 뱃사람들 길잡이인 등대가 서 있다. 세계 이름난 몇몇 등대 모형도 주변에 있다. 한 등대에 올라 일출을 기다린다. 서서히 붉은 기운을 뿜어내며 떠오르는 해, 출어에 나선 통통배가 가르는 물살, 그리고 바다로 135m 뻗어 나간 높이 20m, 폭 2m 스카이워크 다리가 조화롭다. 한동안 수평선을 응시한다. 저 먼바다 끝이 미세하게 일렁인다. 풍랑이 일 것 같다.

● 고립이 가져온 풍요… 금강송과 송이

내륙과의 연결이 어려워 울진대게는 한동안 제 이름을 찾지 못했지만, 고립은 풍요를 부르기도 한다. 울진이 자랑하는 금강소나무가 그렇다. 금강송면 소광리와 북면 두천리를 연결하는 산림이 금강소나무 군락지다. 금강송면은 2015년 서면에서 아예 이름을 바꿨다.

이 군락지는 조선 시대부터 왕명으로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이었다. 금강소나무의 옛 이름 황장목(黃腸木)을 붙여 황장봉산이라 했다. 왕궁이나 재궁(梓宮·왕가의 관)을 짓기 위해 벨 때는 “어명이오”라고 먼저 외쳤다고 한다.

금강소나무 군락지 위로 낮달이 떴다.

금강소나무 군락지 위로 낮달이 떴다.
소광리나 두천리는 20세기 후반에 이를 때까지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거나, 외부를 잇는 도로가 마땅치 않은 산지였다. 1960년대 말까지 나무를 태워 밭을 일궈 사는 화전민촌이 있었다. 거름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잎을 지닌 소나무 군락에는 불을 내지 않았다. 애초 높고 가파른 능선에서 많이 자라기에 화전을 일구기도 쉽지 않았다. 베어내기 어려운 곳에 뿌리내린 터라 벌목이 성하던 일제시대나 1960~70년대를 살아낸 것이다(‘화전하던 산에서 송이 따는 산으로’, 장예지,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석사논문, 2018).

울진 금강송 에코리움 금강송치유센터 내부.

울진 금강송 에코리움 금강송치유센터 내부.

그렇게 버텨 울창(鬱蒼)해진 소나무가 지역민들에게 선사한 진보(珍寶·진귀한 보배)가 송이버섯이다. 1970년 일본인들이 그 맛을 알고 찾기 전까지 찬거리에 불과하던 것이 효자가 됐다. 송이는 15~60년 된 젊은 소나무에서만 자란다. 여전히 인공 재배는 불가능하다. 온전히 그해 기후와 소나무에 달렸다.

‘기후변화로 고사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600년 된 대왕소나무가 있는 이 군락지에 자신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설 ‘금강송 에코리움’이 있다. 금강송 숲길을 걷고 요가와 명상에 빠진다. 금강소나무와 송이 이야기를 듣는다. 소나무 향기 은은한 숙소에는 TV가 없다. 제공되는 식사에도 고기반찬은 뺐다. 숙박 정보는 ‘야놀자’ 앱에서 자세히 찾아볼 수 있단다. 흥미롭다.

금강송 에코리움 숙소 전경.

금강송 에코리움 숙소 전경.

● 염화미소 불영사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이어지는 하원리에 불영사(佛影寺)가 있다. ‘천축산(天竺山)불영사’라고 적힌 일주문에서부터 가람(伽藍)까지는 약 1km 흙길이다. 도중 ‘丹霞洞天(단하동천)’이라고 음각된 암벽을 볼 수 있다. 도교에서 동천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상서로운 붉은 기운 감도는 낙원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불영사 전경.

불영사 전경.
크게 오른쪽으로 휘어져 들면 너른 평지와 연못, 그 뒤로 전각(殿閣)들이 보인다. 다른 절처럼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전각이 배치돼 있지 않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단 정면 양쪽 바닥에 돌거북이 한 마리씩 목을 내밀고 있다. 기단에 가린 몸통이 대웅보전을 떠받친 모양이다. ‘목을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는 위협을 받아서는 아니겠고, 뾰족하고 날카로운 산세에 깃든 화기(火氣)를 억누르기 위함이다. 약 1400년 전 지어진 뒤 5번이나 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대웅보전 앞 삼층석탑도 땅을 비보(裨補)한 것이란다.

화기를 억누르기 위해 불영사 대웅보전 기단 바닥에 배치한 돌거북. 돌거북이 대웅보전을 떠받치는 모양새다.

화기를 억누르기 위해 불영사 대웅보전 기단 바닥에 배치한 돌거북. 돌거북이 대웅보전을 떠받치는 모양새다.

651년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전언이 기록으로 전해지지만, 사실과는 다른 듯하다. 의상이 태백산을 중심으로 창건한 화엄종 세력이 퍼지면서 생긴 사찰 같다는 해석이 일리가 있다(‘문헌 속 울진 불영사 上’, 최선일 여학 심현용 편, 온샘, 2021).

불영산 맞은편 산등성에 있는 ‘부처바위’. 서 있는 부처가 앉아 있는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듯하다.

불영산 맞은편 산등성에 있는 ‘부처바위’. 서 있는 부처가 앉아 있는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듯하다.
그러나 설화와 전설이 얽히지 않은 사찰은 재미없지 않나. ‘불영’도 부처님 그림자라는 말이다. ‘대체 어디에?’ 하고 고개를 쳐들자 산등성이에 곧게 선 큰 바위와 그 앞으로 들쭉날쭉 작은 바위들이 보인다. 부처의 설법에 귀를 쫑긋하고 듣는 제자들 같다. 누구는 “예수의 산상수훈 장면 같다”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그 바위들이 불영사 연못 불영지(池)에 비친다. 연못을 응시하니 염화미소를 언뜻 본 것 같았다.

● 우리에게 다가오는 울진

울진 가는 길이 지난달부터 훨씬 수월해졌다. 강원도 강릉에서 부산까지 잇는 철도 동해선이 개통해서다. 그전까지 수도권에서 울진을 가려면 차를 몰고 가거나, 강릉 속초 등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이제는 강릉까지 KTX로 가서 열차를 갈아타면 2시간 안에 도착한다. 내려갈 때 왼쪽 차창 밖으로 보이는 쪽빛 동해는 덤이다.

울진 죽변해안스카이레일. 바다 위 모노레일을 객차가 시속 5km로 달린다.

울진 죽변해안스카이레일. 바다 위 모노레일을 객차가 시속 5km로 달린다.
울진역에서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바닷가 언덕에 망양정(望洋亭)이 있다.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다. 망양정은 원래 남쪽으로 30km쯤 떨어진 울진군 평해읍에 있다가 19세기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터만 남았다가 6·25전쟁 이후 새로 지은 뒤 2000년대 초에 다시 지었다.

망양정 전경.

망양정 전경.

망양정 처마와 공포.

망양정 처마와 공포.
정자 이름이 말하듯 건물 자체보다 여기서 바라보는 전망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멀리 봐야 한다. 수평선까지가 아니라 그 너머를 보라는 의미로 들린다. 내 미래일 수도 있다.

울진은 그동안 동해를 바라보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제는 시선을 돌리고 있다. 고립되다시피 한 울진이 우리에게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가득한(鬱) 보배(珍)를 품에 안고서.

망양정과 동해. GNC21 제공

망양정과 동해. GNC21 제공

여행스케치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오늘의 운세

    오늘의 운세

  • 독자위원회 좌담

    독자위원회 좌담

  • 지금, 이 사람

    지금, 이 사람

글·사진 울진=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