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오는 23일부터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수입 철강에 50% 관세를 매기기로 하면서 삼성 LG 등 국내 가전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관세로 인해 가전제품 가격이 오르면 수요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전제품 등 이번에 새로 관세가 부과되는 품목의 대미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36억달러(약 4조9300억원)로, 전체 대미 수출의 2.8%를 차지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할 계획이지만, 상당 기간 미국 판매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철강재 무게로 관세 매길 듯
미국 상무부는 12일(현지시간) 연방관보를 통해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냉동고, 오븐, 레인지, 음식물처리기 등 총 10여 개 가전제품을 ‘철강 파생제품’으로 명시하고, 해당 제품에 들어간 철강제품에 50% 관세를 물린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일부 파생 제품에도 똑같이 관세를 적용했다. 제품에 포함된 ‘철강의 가치’(함유 가치)를 따져 관세를 매기는 방식이다. 철강관세는 당초 25%였으나 지난 4일 50%로 인상됐다.
업계에선 함유 가치의 기준이 제품에 들어간 철강의 무게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품 원가에서 철강재가 차지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할 경우 가전업체들이 영업 기밀인 원가 자료를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게를 기준으로 관세를 매기면 산술적으로 제품 가격은 30% 이상 오른다. 예컨대 2000달러짜리 양문형 냉장고(800L급·170㎏ 안팎)에는 컬러강판과 스테인레스강관 등이 50㎏ 정도 들어간다. 무게로 따질 때 철강재의 비중은 약 30%(600달러)다. 여기에 관세 50%(300달러)를 물리고, 나머지 70%(1300달러)에는 상호관세(25%·325달러)를 부과한다.
관세를 반영한 냉장고 가격은 2625달러로 31.25% 뛴다. 미국은 다음달 9일부터 한국에 25% 상호관세를 물리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삼성, LG 가전 수익성 악화될 듯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국 수출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더라도 관세 영향으로 철강재 원가 부담이 커져서다.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철강재는 대부분 한국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세탁기를, LG전자는 테네시 공장에서 세탁기, 건조기, 워시타워를 생산하고 있다. 냉장고, 건조기의 경우 지난해 미국 시장 내 이들 기업의 점유율은 각각 47.4%와 45.4%에 달한다. 올 1분기 LG전자 가전 부문 원재료 비용에서 철강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13.9%(4115억원)에 이른다.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산 철강 비중을 늘려야 하지만 현지 조달 물량을 대폭 키우는 건 쉽지 않다. 미국의 철강 자급률이 80%에 못 미치는 데다 고율 관세로 미국산 수요가 몰리면 가격이 뛸 수밖에 없어서다. 안 그래도 미국에서 유통되는 열연강판 가격은 t당 934달러(11일 기준)로, 국내 유통가(830달러)보다 높다.
미국이 예정대로 한국산 제품에 25% 보편관세를 물리면 한국에서 수출하는 제품도 그만큼 가격 인상 요인이 생긴다. “가격 인상 외엔 방법이 없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가격 인상 요인을 100% 소비자가격에 떠넘길 수 없는 만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데다 전반적인 수요 감소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미국과 관세 협상을 벌여 세율을 떨어뜨리지 않는 한 가전업계의 타격은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채연/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