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국부펀드의 시조는 쿠웨이트다. 1946년 원유 수출을 시작한 쿠웨이트는 1950년대 들어 오일머니가 쌓이자 이 돈을 다시 투자해 수익을 더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쿠웨이트 정부는 외국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1953년 쿠웨이트투자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는 나중에 쿠웨이트투자청으로 확대 개편됐다.
쿠웨이트 모델은 오일쇼크 때인 1970년대 중동의 다른 산유국으로 퍼져나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971년, 아랍에미리트(UAE)가 1976년 국부펀드를 설립했다. 카타르는 이보다 다소 늦은 2005년 국부펀드를 만들었다. 유럽의 주요 산유국인 노르웨이는 1990년 국부펀드 운용국 대열에 합류했다.
산유국이 아니면서 국부펀드를 활발히 굴리는 대표적인 나라는 싱가포르다. 1974년 테마섹을, 1981년 싱가포르투자청을 설립했다. 테마섹이 정부 소유 공기업 자산을 재원으로 투자한다면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외환보유액으로 투자하는 게 차이점이다. 한국과 중국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와 중국투자공사(CIC)는 모두 GIC를 벤치마킹해 각각 2005년과 2007년 창설됐다.
세계 국부펀드의 운용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11조2000억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1조8000억달러의 6배가 넘는다. 노르웨이정부연기금이 1조8000억달러로 가장 크며 CIC(1조3300억달러), 아부다비투자청(1조달러), GIC(7000억달러) 등의 순이다. KIC의 운용 규모는 2000억달러를 약간 웃돈다.
미국은 오랜 기간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에 시달리며 국부펀드를 설립할 생각도 여력도 없었다. 그런데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12개월 내 설립 지시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국부펀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처음엔 관세 수입이나 보유 금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최근엔 한국과 일본 등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자금으로 국가경제안보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국부펀드로 활용하자는 방안이 나왔다. 관세 협박으로 동맹국에서 뜯어낸 돈으로 국부펀드를 만들겠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