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러스’(사진)는 사랑에 빠지게 하는 바이러스가 퍼지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민망할 정도로 동화적인 상상이지만 영화는 이 오글거리는 전제를 과감하게 밀고 나간다.
이야기는 번역가이자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택선(배두나 분)이 가족들의 강요로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학자 수필(손석구 분)과 소개팅을 하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수필은 연구소에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고 자리를 뜨고, 자존심이 상한 택선은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수필은 택선의 집으로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다. 함께 저녁을 먹게 된 택선은 그에게서 느닷없는 고백과 청혼을 받는다. 당황한 택선은 수필을 쫓아내고 홧김에 상에 남겨진 소주와 어묵 한 조각을 먹는다.
그리고 수필이 남긴 이 어묵 한 조각, 그 작은 한 입이 택선과 전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수필이 연구 중이던 우울증 치료를 위한 바이러스는 감염자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부작용이 있었고 수필은 감염 상태였다. 그 바이러스가 택선에게 옮겨 온 것. 더 큰 문제는 감염 이틀 만에 수필이 죽으며 벌어진다. 그는 죽기 전 택선에게 이균 박사(김윤석 분)를 찾아가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영화 속 코미디적 설정 대부분은 바이러스로 인해 ‘아무에게나’ 사랑에 빠지며 일어나는 해프닝과 소동에 기반한다. 다만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중추인 대사는 이 영화의 취약점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전(正傳)이라고 할 수 있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노팅 힐’(1999),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2001~2025)의 공통점이라면 잠재적 연인이 나누는 티격태격 대화다. 유머와 위트를 기반으로 쓰인 대사, 대화를 통해 관객은 웃음도, 애정에 대한 공감도 얻는다.
원작이 소설이란 점을 감안하면 애초부터 캐릭터의 대사와 문학적인 서술이 부족하진 않았을 것이다.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변주에 실패한 또 다른 예가 아닐는지. 예를 들어 시골 동네 어르신들의 감염 해프닝 대신 택선의 주변 인물로 감염 대상자를 좁히고, 그 안에서 로맨스 상대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갖춘 스토리 아니었을까.
이 영화의 성취가 있다면 멜로 캐릭터로서 김윤석을 재발견한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시도되지 않지만 중년의 멜로 영화가 제작된다면 그 최적의 배우는 단연코 김윤석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