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우산 혁명’ 겪은 홍콩인들의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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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찬와이 지음·문현선 옮김/308쪽·1만7000원·민음사


할머니는 새벽에 돌아가셨다. 아빠는 그날 오후 부동산 중개업자를 찾아 집을 팔아버렸다. 소파, 책장, 잡지까지 집에 딸려 한꺼번에. 할머니의 집은 카페로 개조됐다가 이후 미용실로, 다음엔 여성 속옷 가게로 바뀌었다. 심상(尋常)하게.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시점부터 2019년 민주화 운동까지 세월을 따라가는 홍콩판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누나 탄커이와 12세 터울 남동생 탄커러.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부모 밑에서 외롭게 큰 남매는 서로만이 기댈 언덕이다.

탄커러가 1997년 태어난 게 암시하듯, 소설은 홍콩 반환 뒤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적 사건과 역사적 사건이 빈번하게 교차하는 게 특징. 2006년 12월 15일 누나 탄커이는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잇는 스타페리 부두 보존 시위에 갔다가 연인이 다른 여자와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개인의 이별은 부두의 상징물인 시계탑이 톱질에 잘려나가는 광경과 오버랩된다.

발랄하고 되바라진 아이의 서술로 전개되던 전반부와 달리 소설은 후반부에 이르러 진중해진다. 시위를 두고 누나와 동생이 갈등하면서다. 누나는 동생을 시위 현장에서 떨어뜨리려 애쓰고 동생은 누나를 원망한다. 실제로 홍콩 사회는 2014년 행정장관 직접 선거를 쟁취하려는 우산 혁명이 미완으로 끝난 뒤 ‘우산 혁명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완전한 직선제 요구가 좌절되면서 사회가 무력감에 휩싸였던 것.

1960년 홍콩에서 태어난 저자는 우산 혁명 당시 최초로 입장을 밝힌 지지자 10인 중 하나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다가 2018년 대만으로 이주했다. 작가는 당시 시위 현장에서 어린 소년을 보고 “동생,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게 소설의 기원이 됐다. 소설이 조금 더 나이 든 홍콩인이 후배들에게 보내는 온기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홍콩인의 정리되지 않은 내면을 보며 한국 독자도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첨밀밀’의 각본 기획에 참여한 시나리오 작가 출신 저자의 필력 덕에 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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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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