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 말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세 개 대륙에 걸쳐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는 증거를 찾아다녔지만, 발견에 실패했다. 오히려 세계가 광기에 빠져드는 것을 목격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는 영국의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역사가이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버트런드 러셀이 쓴 철학 에세이 모음집이다. 1950년 출간 당시 사회적 통념과 권위에 도전하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러셀은 이데올로기, 국가주의, 종교적 광신 등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이성이 마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현대 교육이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키우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이 책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다양한 예시가 담겼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믿음에 빠지는지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적십자사는 흑인의 피를 수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독일에선 아리아인의 피가 유대인의 피로 오염되지 않도록 했다. 러셀은 사람들이 신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기보다는 신념과 일치하는 증거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는다. 그는 비판적 사고야말로 세상의 거짓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한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