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위기 상황에서 맞고 틀리고를 떠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비상계엄 사태에서 정치인 체포 등을 시도한 의혹을 받는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당시 방첩사의 대응과 관련해 이같이 해명했다. 그밖에 이번 계엄 사태에서 수많은 지휘관이 ‘명령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역사상 수많은 폭력과 학살은 명령에 대한 복종의 형태로 이뤄졌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책임을 물은 1차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기소된 지도자 대다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론했다. 나치 독일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아이히만도 자신은 ‘기계에서 작은 톱니바퀴의 이’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이들을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잘못된 명령에 복종한 이들은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라, 윤리적 주체로서 사유하지 못한 무능하고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벨기에 심리학자 에밀리 A 캐스파의 <명령에 따랐을 뿐!?>은 악의 평범성을 신경과학으로 규명한 책이다. 뇌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끔찍한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지를 설명한다.
권위에 대한 복종 연구는 1961년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연구에서 출발했다. 실험자의 명령을 받은 참여자가 다른 이에게 얼마나 고통을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한 실험이다. 이 실험 참가자의 65%는 상대의 비명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명령에 따라 최대치인 450V의 전압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캐스파는 밀그램 실험에 인지신경과학을 결합했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명령에 복종하기로 동의했을 때 그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복종은 죄책감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을 마비시킨다. 죄책감을 경험할 땐 뇌에서 타인의 생각·감정을 이해하는 능력과 관련 있는 측두두정 영역이나 배측방 전전두엽 피질, 쐐기앞소엽 같은 영역과 부정적 감정 처리와 관련된 전측 섬 및 전대상 피질 등 변연계 영역 등 다양한 곳이 활성화된다. 캐스파의 연구에 따르면 죄책감과 관련된 뇌 영역의 활동성은 본인 의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명령으로 나쁜 일을 할 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군가 시켰다는 핑계가 잔혹하고 끔찍한 행위의 책임과 거부감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폭력이나 학살 등 잔인한 행동에 거부감을 가장 덜 느끼는 것은 ‘중간자’ 위치에 있을 때다. 충격 버튼을 눌러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게 하는 실험에서 직접 버튼을 누를 때보다 다른 사람이 버튼을 누르게 하는 역할일 때 실험 참가자들은 더 자주 가학적인 선택을 했다. 심리적으로 중간자 위치에 있는 건 편안하다. 최초의 명령에 책임을 지지 않고 직접 행동을 수행하는 부담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 속 수많은 전쟁과 대학살에서 중간 계층 지도자들이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는 군대 등 계층적 구조에서 집단 폭력이 쉽게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명령에 저항하는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이들은 상대적으로 공감 능력이 높다. 명령에 따랐을 때 발생할 피해에 높은 책임감을 느끼며, 위험을 좀 더 감수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한 실험에선 실험 참가자에게 공감 능력과 관련된 전두엽 피질을 자극하고 옥시토신을 주입하자 폭력적인 명령에 불복종하는 확률이 높아지는 결과를 보였다. 사회 분위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탈권위적인 문화일수록 명령을 거스르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 책은 명령에 복종해 폭력을 저지른 이들을 악인이나 괴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한다. 개인을 악마화하는 감정적 태도는 그들이 폭력에 가담하게 만든 정치·역사적 맥락을 간과하게 할 수 있어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목적이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복종을 통한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복종의 메커니즘을 먼저 알고 구조적으로 공감과 도덕적 용기를 북돋을 수 있는 개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