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 삼성전자 경북 구미사업장. 산처럼 쌓아놓은 휴대폰 15만 대가 불길에 타올랐다. 삼성의 첫 애니콜 휴대폰 ‘SH-770’이었다. 휴대폰 시장 진출을 위한 야심작이었지만 불량률이 11.8%에 달했다. 이건희 회장은 500억원 규모 불량품을 전량 수거해 소각하는 결단을 내렸다.
‘애니콜 화형식’과 비슷한 일이 2004년 교촌치킨에도 있었다. 교촌은 조류인플루엔자(AI) 유행으로 국내산 닭날개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태국에서 가공닭 100억원어치를 들여오기로 했다.
현지로 날아간 권원강 회장은 닭 상태를 확인하고 아연실색했다. 권 회장은 이달 초 출간한 자서전 <최고의 상술>에서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고 술회했다. 판매할 수 있는 품질의 닭은 고작 10억원어치에 불과했다. 반나절을 고민한 권 회장의 선택은 ‘전량 처분’이었다.
권 회장은 국내 프랜차이즈업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마흔 살이 되던 1991년 개인택시 면허를 판 돈 3500만원으로 구미의 한 굴다리 옆에 작은 통닭집을 차렸다. 그로부터 34년 뒤 교촌은 가맹점 1300여 개의 국내 최대 치킨 기업이 됐다. 2020년 교촌에프앤비는 프랜차이즈업계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직상장했다.
권 회장은 “정직은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고수해온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만약 품질이 떨어지는 태국산 닭을 그대로 팔았다면 당장은 수익이 났겠지만 고객의 신뢰를 잃는다면 그 손실은 몇 배, 아니 수십 배 이상으로 돌아왔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임직원을 향해 “전년 대비 얼마, 타사 대비 얼마, 이런 말을 쓰지 말라”고 한다. 교촌이 ‘1등 치킨’인데 타사 대비, 전년 대비 얼마를 팔았는지가 과연 중요하겠느냐는 이유에서다.
광고를 ‘미래 이익을 위한 투자수단’으로 높이 평가하는 점도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통닭집 창업 2년 후 처음 이익금 50만원이 생겼다. 그는 이 돈을 몽땅 신문 광고비로 썼다. 광고 효과로 매출이 두 배 증가하자 이번엔 광고비를 두 배로 늘렸다. 매출은 다시 두 배 넘게 껑충 뛰었다. 그는 “단돈 50만원을 아끼려고 신문광고를 하지 않았다면 백 배, 천 배 이상의 수익을 놓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