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음악 축제 코첼라 무대를 뜨겁게 달군 블랙핑크의 제니, 수천만 명의 전 세계 팬덤을 거느린 방탄소년단(BTS), 뉴욕 한복판에 자리 잡은 한국식 기사식당까지. 세계인을 매료시킨 K컬처를 보면 어쩌면 한국인에게 우월한 문화적 유전자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물학자인 장수철 연세대 교수가 쓴 <문화는 유전자를 춤추게 한다>는 이처럼 다소 엉뚱하면서도 한 번쯤 떠올려 봤을 법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저자는 K팝, K푸드 등 다양한 한국 문화 콘텐츠가 강한 소구력을 갖는 이유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썼다.
저자는 칼군무가 두드러진 K팝이 인간의 모방 본능을 자극하며 세계인을 사로잡았다고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인류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춤을 추는 것을 즐겨 왔고, 모방 본능이 있다.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혼자 살아남기 어려웠던 인간은 집단으로 똘똘 뭉쳐 다른 사람의 사냥 기술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방 유전자를 지닌 인간은 강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아이돌의 칼군무를 보며 K팝에 빠져들게 된다. 저자는 “K팝 댄스는 리듬과 멜로디, 가사를 잘 반영한 간단하면서도 즐거운 포인트 안무가 가미돼 따라 하기에 무척이나 적합하게 고안됐다”며 “한국과 아시아는 물론 남미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세계인이 K팝 퍼포먼스를 보면 몸을 들썩이는 데는 선천적으로 전해진 유전적 이유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유전자에는 문화적 특수성이 새겨져 있을까? 책에선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에베레스트 등산을 돕는 셰르파는 다른 지역 사람보다 혈액 내 산소 운반 능력이 좋다는 게 유전적으로 확인됐지만, 춤은 다양한 근육과 능력이 종합된 움직임이기 때문에 유전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저자는 “하나의 가설로서 ‘가무에 능한 한국인의 유전자’를 상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K팝을 출현시킨 우리 민족만의 생물학적 특징이나 유전적 증거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힌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진화론의 최전선에 있는 유전자·문화 공진화(共進化)론을 소개하는 첫 교양 과학도서라는 점에 있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모든 생명체가 자연환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진화를 거듭한 것처럼, 인간의 유전자는 자신이 만든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한다는 것이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