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오프라인은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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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오프라인은 죽지 않았다

지난 9월 어느 주말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주차장에 들어가기 위해 길에서만 한 시간을 기다렸다. 주차장에 진입한 뒤에도 빈자리를 찾느라 30분을 더 헤맸다. 그런데 짜증보다 더 앞선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오프라인 쇼핑몰이 다 죽었다는데, 왜 여긴 붐비나. 그날의 풍경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의문이 지난 24일부터 연재 중인 ‘오프라인 유통의 반격’ 시리즈의 출발점이 됐다.

유통의 중심이 완전히 온라인으로 옮겨간 시대다. 한국에선 쿠팡이, 미국에선 아마존이, 중국에선 테무가 시장을 다 먹을 기세다. 대다수 유통사는 “오프라인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현실은 다르다. 사람들은 여전히 매장을 찾고 시간을 보낸다. 단지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무는 경험을 위해서다. 오프라인은 과거 ‘판매의 공간’에서 ‘시간을 설계하는 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상품 아닌, 시간을 판다

시리즈를 취재하며 접한 오프라인 현장은 예상보다 역동적이었다. 아이파크몰은 ‘덕후의 성지’가 됐다. 수백 개의 가챠머신, 캐릭터 피규어, 굿즈로 가득 찬 이 공간에는 MZ세대가 가득하다. 잠실 롯데월드몰은 외국인들이 한국적 취향을 체험하는 ‘K랜드마크’로 변모했다. 아더에러, 이미스, 마르디메크르디 등 K패션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매장을 통해 ‘한국적 정서’를 세계에 퍼트린다. 더현대서울은 백화점을 공원으로 재해석했다. 천장을 걷어 올린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는 쇼핑 공간을 문화와 휴식의 공간으로 바꿔놨다. 이들 매장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가격 경쟁이 아니라 체류 경쟁, 물건이 아니라 콘텐츠로 승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의 본질은 이렇게 달라졌다. 과거엔 물건을 떼다 파는 리테일업이거나 브랜드를 입점시켜 수수료를 받는 부동산 임대업에 가까웠다. 이제는 사람을 불러 모으고, 체류시키고, 그 시간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이 됐다. 매출의 중심축이 ‘팔리는 상품’에서 ‘머무는 사람’으로 옮겨갔다. 유통의 경쟁력은 이제 재고 회전율이 아니라 체류 시간에 비례한다.

Z세대의 아날로그 향수

이 흐름의 중심에는 Z세대가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지만 ‘아날로그 향수’를 가장 강하게 느끼는 세대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랐지만, 오히려 더 현실의 감각을 갈망한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상품을 탐색하고 오프라인에서 실제 경험을 통해 브랜드를 선택한다. 그래서 인공지능(AI)이 만든 완벽한 이미지 속에서도 진짜 질감과 진짜 냄새, 진짜 소리를 찾는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고 이미지를 생성할 순 있지만 사람의 경험과 감각까지 복제하진 못한다. 디지털은 데이터를 축적하지만, 오프라인은 기억을 새긴다. AI는 패턴을 학습하지만, 인간은 감정을 체험한다. 그 차이가 오프라인의 존재 이유다. 화면 속에는 숫자와 알고리즘이 남지만, 현장에는 사람의 온기가 남는다. 바로 그 온기가 지금 유통의 마지막 경쟁력이다.

오프라인의 부활은 단순한 ‘레트로 유행’이 아니다. 끊임없이 ‘접속된’(online) 사회에서 사람들은 잠시라도 ‘끊어지길’(offline) 원한다. 알림음과 알고리즘이 쏟아지는 화면을 벗어나 냄새와 소리와 움직임이 있는 현실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가 붐비는 오프라인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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