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집권 여당에서 가장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 시기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이다. 김성식 의원은 당시 여권 최고 실세였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물러나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김세연 의원 등 소장파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결국 그의 낙마를 이끌었다. 당 지도부가 추진하는 법안에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는 경우도 많았다. 친이명박계로 분류된 의원 일부는 수시로 정부를 공격했다.
당 주류는 이런 비판을 불편하게 여겼다. 소장파 의원의 뒷담화를 하는 일도 많았다. 다만 거기까지였다. 이런 발언을 못 하게 하는 ‘입틀막’은 없었다. 쓴소리를 자주 한다는 이유로 끌어내리지도 않았다.
사라진 당내 토론
분위기는 다음 정부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배신자’ 딱지를 붙이고 끌어내렸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은 감히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 수 없는 분위기였다. 소신 발언을 한 의원을 향한 강성 지지층의 공격도 거셌다. 윤석열 정부 땐 여권 주류가 당 대표까지 몰아냈다.
지금의 여당도 다를 게 없다. 애초 지난 총선 때 반(反)지도부 인사 대부분은 공천을 못 받았다.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의 ‘수박’이라고 공격하는 강성 팬덤의 기세는 더욱 강해졌다.
이 와중에도 일부 의원은 소신 발언을 했다. 박희승 의원은 당 지도부가 추진하는 내란특별재판부를 두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과 같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직격했다. 이언주 의원은 산업통상자원부 내 에너지 분야를 환경부 산하로 보내겠다는 당정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반기를 들었다. 곽상언 의원은 여권 팬덤의 상징인 김어준 씨 방송을 겨냥해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소영 의원은 주식 양도소득세의 대주주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계획을 거듭 비판했다.
여당 내 쓴소리 이어질까
당 주류의 반응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박희승 의원이 내란특별재판부 관련 비판 발언을 이어가자 회의를 주재하던 전현희 최고위원은 “박희승 의원님”이라고 부르며 발언을 제지하는 듯한 행동을 했다. 이후 다른 지도부 인사들은 앞다퉈 박희승 의원을 공개 비판했다. 곽상언 의원의 발언을 두고도 강한 비난이 이어졌다. 한 다선 의원은 민주당 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SNS 대화방에서 두 의원을 향해 “말 똑바로 하라”고 질타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동의는 못 하지만 문제 제기에 공감하고 응원한다”는 의견을 몰래 전달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나고 있다. 박희승 의원은 결국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나마 양도세 대주주 기준 강화를 철회하자는 이소영 의원의 주장은 수용됐다.
앞으로 민주당이 어떤 여당이 될지는 박희승·이언주·곽상언·이소영 의원의 소신 발언이 이어지는지, 또 자기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는 다른 의원이 더 나오는지에 달렸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은 하모니 메이커” “현 정부의 100일은 A학점” 같은 발언만 쏟아지는 여당이 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 이뤄질 것이다. 지금까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