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45일 앞인데 후보 선출에만 매몰
공약 실종에 인수위 없어 새 정부 혼란 우려
후보들은 구조적 위기 돌파할 혁신 비전과
대통령-국회 충돌 구조 풀 실질 해법 내놔야
앞으로 각 당 대선 후보가 선출된다 하더라도 5월 12일부터 시작되는 공식선거운동 기간은 고작 22일에 불과해 유권자가 충분히 판단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더욱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선거 다음 날인 6월 4일 곧바로 취임한다. 후보들의 집권 청사진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채 치러지는 ‘깜깜이 선거’가 자칫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동안 국정 운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사회적 대전환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선택의 순간이다. 시간이나 여건을 탓할 여유가 없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 속에 놓여 있다. 지방 인구는 감소하고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서 지방소멸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동시에 초거대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일자리 상실에 대한 우려도 크다. 게다가 미중 간의 전략적 대립으로 자유무역에 기반한 세계화 시대가 저물고,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이러한 구조적 위기를 돌파하려면 6·3 대선이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획기적이며 실효성 있는 대응 전략을 마련할 계기가 돼야 한다. 1950, 60년대 베이비붐 세대가 설계한 교육 및 복지 체계를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생애주기에 맞춰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고령 인구가 활력 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구조를 개편하고, AI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크게 향상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인기 영합적 공약이나 정략적 합종연횡에 기대지 말고, 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이고 책임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시급히 개혁해야 할 대상이 정치·행정 체계다. 1987년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제정된 현행 헌법은 지난 30여 년간 민주주의 운영의 기본 틀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역할이 한계에 봉착했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과 그 독점적 행사는 국민의 기대와 괴리되면서 병리적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국회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부재한 점도 심각한 문제다. 이로 인해 대통령과 국회가 충돌해 국정이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지더라도 이를 해결할 마땅한 제도적 수단이 없다.
더 큰 문제는 6·3 대선 이후에도 헌정의 불안정이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국회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하는 권력의 과잉 집중이 우려되며, 보수 진영 후보가 당선될 경우 국회와의 충돌로 다시금 국정 교착 상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이러한 헌정 체계의 병리적 구조를 해결할 실질적 해법을 제시하는 후보가 누구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헌법 질서를 위한 실마리는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에 담겨 있다. 특히 ‘공존과 타협’이라는 공화주의 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누가 권력을 획득하는가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권력을 나누고 공존하며 타협하는 정치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이를 위해 국회가 국무총리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를 임명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지금까지 형식적으로만 인정돼 온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실질화하고, 기획·예산 또는 조직·인사 기능을 총리 산하로 이관해 내각 통할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개편도 가능하다. 또한, 장관에게 실질적 인사권을 부여하되 정치적 중립성을 조화시키기 위해 정무차관과 행정차관을 분리하는 제도 역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는 법률 개정을 통해 실현 가능하지만,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은 개헌을 통한 이원정부제의 도입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총리는 국회가 선출하는 권력 공유 체제를 통해 공존의 정치 질서를 구현할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경제·사회 및 정치·행정 전반의 대전환을 슬기롭게 추진하기 위해, 어떤 후보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지 유권자들이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권혁주 한국행정연구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