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호재]칸 초청 한국 영화 ‘0’편… ‘포스트 박찬욱’은 왜 없나

2 days ago 6

이호재 문화부 기자

이호재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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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주요 부문에 초청된 한국 영화의 수다. ‘경쟁 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 등 이른바 칸의 본류라 불리는 섹션 어디에도 한국 영화는 없었다.

단기 부진으로만 보기 어려운 흐름이다. 2022년 ‘헤어질 결심’(박찬욱),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이후 3년 연속 경쟁 부문 진출작이 없기 때문이다. 연상호의 ‘얼굴’, 김병우의 ‘전지적 독자 시점’은 출품했지만 초청받지 못했고,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 나홍진의 ‘호프’ 같은 기대작은 후반 작업 지연으로 출품조차 하지 못했다. 국제영화제에 후보로 오를 만한 ‘새 이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실제로 올해 영화계 내부 분위기는 처음부터 조심스러웠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이제는 칸에 갈 수 있느냐보다 영화가 완성까지 갈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제작 초기 단계에서 기획이 무산되는 사례가 잦고, 단편만 반복하다 업계를 떠나는 신예도 늘고 있다.

이 같은 정체는 구조적 한계의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거장 감독들이 세계 무대에서 한국 영화의 존재감을 키워온 것은 분명하지만, 그 뒤를 이을 창작자들이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은 부족했다. 스타 시스템은 유지됐지만, 산업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몇몇 이름이 빠졌을 때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산업 전반의 체력도 떨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4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2억2667만 명이던 국내 관객 수는 지난해 1억2313만 명으로 줄었다. 다른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극장이 생기를 잃고, 프로젝트는 미뤄지고, 투자도 줄었다”며 “흥행이 흔들리면 실험과 다양성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지금 한국 영화는 그 경계에 서 있다”고 말했다.

투자 환경의 변화도 창작의 폭을 좁히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 유통 구조가 극장 기반 제작 시스템을 빠르게 대체했고, 중·저예산 영화는 투자받기 어려워졌다. 특히 실험적이거나 예술성이 강한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 탈락하는 일이 잦다. 시나리오보다 투자 설명서를 먼저 써야 하고, 영화보다 숫자를 먼저 말해야 한다. 창작의 자율성은 줄고, 위험을 피하려는 논리가 투자 기준이 되는 흐름이 고착되고 있다. 물론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21년 폐지됐던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부활을 준비 중이고, 독립영화계는 여전히 좁은 틈을 비집고 가능성을 틔우려 애쓰고 있다. 젊은 감독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 중이다. 다만 이런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생태계를 복원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제 신인 감독을 위한 시스템을 다시 짜야 할 시점이다. 단기 지원이나 일회성 공모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획부터 데뷔 이후까지 연결되는 연속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영화진흥위원회를 중심으로 신인 감독들을 위한 시나리오 개발, 공공 펀딩, 해외 영화제 전략 컨설팅 등 다층적 프로그램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물론 효과는 곧바로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창작의 흐름이 이어질 때, 비로소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회복되고 칸의 가능성도 다시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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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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