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운 것은 실증 원자로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기술을 발명하는 데 20년, 현장에 보급하는 데 20년이 걸릴 것으로 봅니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2010년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자신이 2006년부터 팀을 꾸려 기존 대형 원자로를 대체할 미래 에너지원을 창출하고 있다고 소개하는 자리였다. 지난달 28일 찾은 미국 와이오밍주 테라파워 케머러 1호 건설 현장에서는 게이츠 전 회장의 꿈이 20년 만에 현실화하고 있었다. 테라파워는 19%대로 농축된 우라늄을 사용하되 액체 나트륨(소듐)을 냉각재로 활용(소듐냉각고속로·SFR)하는 방식의 소형모듈원전(SMR)으로 사업 방향을 구체화했다. 지난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이 회사에 상업용 첨단 원전 건설을 승인했다. NRC가 신규 상업용 원전 건설을 허가한 것은 10년 만이다. SMR 같은 첨단 원전 건설 승인은 미국 내 최초다.
실증 원자로 건설 현장에선 냉각재 테스트 시설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2030년까지 건설될 예정인 345㎿e(전기출력메가와트)급 원자로의 첫 단추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여기에서 에너지의 미래가 시작된다”며 “이곳이 바로 차세대 원자력 에너지의 탄생지”라고 강조했다.
SMR은 세계 에너지 판도를 뒤흔들 게임체인저로 꼽힌다. 주변 20~30㎞를 비상계획구역으로 설정해야 하는 대형 원전과 달리 지하에 원자로를 설치해 300m 범위의 통제 구역만 설정하면 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대형 주거 지역 같은 전력 소비지 바로 옆에 붙여 지을 수 있다. 2033년 글로벌 SMR 시장 규모는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테라파워의 SFR 기술에 적용되는 액체 나트륨은 약 880도에서도 끓지 않는다. 300도가 넘는 환경에서도 물이 끓지 않도록 높은 압력을 유지해야 하는 경수로형 원전과 달리 대기압에 가까운 환경에서 가동할 수 있다. 외부 전원이 끊기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중력과 자연순환, 공기냉각 등으로 자연 냉각이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테라파워 최대주주는 게이츠 전 회장이며 2대 주주는 SK그룹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는 2022년 이 회사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SK그룹은 2035년 상업화를 목표로 국내 최초 4세대 SMR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르베크 CEO는 “4년 전 큰 금액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이후 한국수력원자력, HD현대, 두산에너빌리티, 엔비디아 등이 이 회사에 투자자로 참여했다.
케머러(미국)=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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