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거장 최병소 유고전
'신문 지우기'연작 21점 전시
신문지와 연필과 볼펜. 가장 흔한 재료로 만든 화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연필 선을 빼곡하게 그어 생긴 광택은 종이가 제3의 물질로 변한 듯한 인상을 준다. 수없이 반복된 선 끝에 종이가 찢긴 흔적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울 신사동 페로탕 서울이 최병소 작가의 작고 후 첫 전시 '언타이틀드(Untitled)'를 열었다. 지난해 별세한 작가의 생애 마지막 10여 년간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평생 지속해온 지우는 행위가 어떻게 화면의 밀도와 물성으로 축적됐는지를 보여준다. 신문지와 잡지, 신문용 대형 종이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대형 평면 작업과 소형 작품이 전시장에 걸렸다.
작품 대부분은 흑연으로 뒤덮인 검은 화면이다. 작가는 모나미 볼펜으로 신문이나 잡지의 글과 이미지를 다 지우고 그 위에 다시 한번 연필로 화면을 덮었다. 반복된 긋기로 표면에는 금속성에 가까운 광택이 생겼다. 검은색 화면은 얼핏 모두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작가가 끝없이 반복한 긋기와 지우기의 시간은 작품마다 다른 밀도와 흔적으로 남았다. 작가는 이를 두고 "시간을 지우는 행위"라고 말했다고 한다.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이끈 최병소는 1975년부터 신문지에 인쇄된 글과 사진을 연필로 반복적으로 지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무언가를 그리는 대신 지우는 행위를 택했다. 작업의 출발점은 유년기 기억이다. 1950년대 갱지로 만든 교과서에 글씨를 쓰면 종이가 쉽게 너덜너덜해졌던 경험, 노트 살 돈이 없어서 신문지를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이 신문지와 연필이라는 재료 선택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작업을 1970년대에 시작한 것을 당시 언론 통제에 대한 저항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정보가 과잉된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수많은 정보를 걷어내고 본질로 들어가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전시는 3월 7일까지.
[정유정 기자]



![[오늘의 운세/1월 22일]](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1/22/133206626.1.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