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평론가, 출판인 그리고
독서가로 살아온 우리 비평계의 거장
김병익 선생(金炳翼, 1938~ )은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 동안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면서 줄곧 문학, 학술, 출판 관련 기사를 썼다. 1967년 《사상계》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평론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고, 1970년에는 그를 포함하여 이른바 ‘문지 4K’로 불리는 문학평론가 김현(金炫, 1942~1990), 김치수(金治洙, 1940~2014), 김주연(金柱演, 1941~ )과 함께 계간 《문학과 지성》을 창간했다. 1974년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한국기자협회장을 맡았으나 이듬해 언론자유운동에 나섰다는 이유로 기자직을 잃고 만다(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사건에 연루된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해직 기자로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그는 ‘문지 4K’와 황인철 변호사(黃仁喆, 1940~1993)가 각각 200만 원씩 모은 1000만 원을 자본금으로 1975년 12월 서울 종로구 청진동 해장국 골목 건물 2층에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를 설립하고 대표가 되었다. 그 후로 50년의 세월이 흐른 2025년 현재, 구순을 바라보는 김병익 선생은 우리 문화계의 원로이자 독서가로서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거니와, 선생의 일생을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했고,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문화부에서 기자 생활(1965~1975)을 했고, 한국기자협회장(1975)을 역임했으며, 계간 『문학과지성』 동인으로 참여했다. 문학과지성사를 창사(1975)하여 대표로 재직해오다 2000년에 퇴임한 후, 인하대 국문과 초빙교수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대위원장(2005~2007)을 지냈다. 현재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으로 있다.― 출처: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
김병익 선생은 문학을 주축으로 하는 문화 분야의 평론가로서 수많은 저술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축적해 왔을 뿐 절대로 요란스레 펼치지는 않았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문화인과 지식인들조차 진영의 논리 혹은 공허한 자기주장에 치우쳐 있을 때 “사유의 빈자리에 다른 사람들의 지식과 의견을 채우려 노력”했던 거장(巨匠)이 바로 김병익 선생이었다. 2020년 벽두에 선생을 인터뷰한 문화일보 문화부장 최현미 기자는 그의 성정(性情)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82)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이 좋아하는 단어는 ‘성찰’이다. 그가 말하는 성찰은 자신의 사유가 옳은지에 대한 성찰, 자신의 생각이 바른지에 대한 사유다. 다른 말로는 ‘되풀이-생각하기’다. “사람이든 글이든 사건이든 더 나아가 역사에 대해서든 되풀이해서 묻고 따지며 그의 편에서 해석하고 이해해 보려 했다”는 그는 평생 주장하기보다 듣는 것을 좋아했고, 스스로 ‘차하(次下)자’로 자리매김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버리려 무던히 애썼다. 그렇게 마련된 사유의 빈자리에 다른 사람들의 지식과 의견을 채우려 노력해왔다.― 출처: [문화일보, 2020.01.08], 김병익 “과거 지우는 건 歷史 혐오 …‘관용’ 없는 적폐청산 지혜롭지 못해”, 최현미 기자.
10년에 걸친 기자생활을 접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를 차려 대표로서 출판물 기획과 편집·제작은 물론 영업과 경영까지 두루 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문화부 기자로서 수많은 책과 출판인을 가까운 거리에서 취재했던 경험이 자양분으로 남아 그를 이끌어 주었으리라. 실제로 위에서 인용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특히 문학과지성사 설립 전후의 상황과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가장 인간적인 기억이라면 동아일보 사태를 겪고 실업자가 됐다가 문학과지성을 창업하던 1974년에서 1975년 그 1년 사이의 일들이다. 권력과 자유가 충돌하는 그 싸움 현장에 있었고 문학 하는 친구들과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갔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그렇고, 내 인생의 전환기였다. 책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정문길의 ‘소외론 연구’ 같은 책들, 1970년대 후반 문학과지성을 창업한 지 3, 4년 사이에 나온 책들이다. 한국 사회 정신·문화사의 전환점을 이룬 책이다. 그 뒤 우리 사회가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을 벌였는데 그 단초는 문학적으로는 이 책들로부터 출발했다.― 출처: [문화일보, 2020.01.08], 김병익 “과거 지우는 건 歷史 혐오 …‘관용’ 없는 적폐청산 지혜롭지 못해”, 최현미 기자.
국내 최초의 공동비평서 『현대한국문학의 이론』,
그리고 문화론집 『지성과 반지성』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재직 중이던 1970년, 김병익 선생은 프랑스문학연구자들인 ‘김주연·김치수·김현’과 함께 편집동인으로 참여하여 계간 문예지 《문학과 지성》을 창간한다. 그리고 1972년에는 4인이 공저자로 참여한 『현대한국문학의 이론』이라는 비평서를 펴낸다. A5판 크기로 민음사(民音社)에서 발행한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 비평서로 기록되었다. 이 책은 저자들이 “4·19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유와 역사 두 개념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통을 이어받되 새로운 도전으로써 창조적 계승을 이룩한다”는 자세를 서문에서 표명하고 있다. 내용을 보면 ‘한국문학 이론의 기본·방법론의 고찰·작가의 가능성’ 등 3부에 걸쳐 모두 32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김병익은 ‘정치와 소설’이란 글에서 “정치가 상황으로 되어 개인의 삶, 즉 자유를 억압함에 대하여 문학은 저항하는 언어양식임을 천명”하고 있다. 즉, “진정한 참여론의 문예에서는 시대의 분단적 비극에 대하여 상투적인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인간형이 요청됨을 말하여, 문학의 효용론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비평론”을 펴고 있다.
그리고 1973년, 마침내 공동저술이 아닌 단독저술로서 『한국문단사(韓國文壇史)』를 일지사에서 펴낸다. 1974년에는 문화론집(文化論集)을 표방한 『지성(知性)과 반지성(反知性)』이 민음사에서 출간된다. 이번 호에 소개할 초판본은 바로 『지성과 반지성』으로, 신문기자로서의 활동을 거의 마감할 즈음에 나온 책인 동시에 이듬해에 동료들과 힘을 모아 설립한 출판사의 명칭을 ‘문학과지성사’로 삼은 까닭을 짐작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1974년 9월 20일 초판 1쇄가 발행된 『지성과 반지성』은 한마디로 김병익 선생의 ‘문화’를 대하는 도저한 안목이 곳곳에 배어 있는 문화비평서다. ‘책 머리에’라는 제목의 서문을 보면 “이 책은 한 사람의 문화부 기자로서 쓴 글을 모은 것이다. 여기 수록된 글들은 그때그때 여기저기 청탁을 받고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원래 발표된 것을 그대로 살려” 싣고 있으며, 그 이유인즉슨 “하나는 기자란 한계를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한 때문이며, 또 한 가지 이유는 부분적인 혹은 현상적인 미비점에도 불구하고 문화,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한 나의 기본태도는 별로 바뀌지 않은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글 머리에’ 말미에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준 사람들의 면면이 엿보이는데, 우선 “이 책을 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민음사 박맹호 사장의 호의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박맹호(朴孟浩, 1933~2017) 대표는 1966년 민음사를 설립하고 ‘세계 시인선’, ‘오늘의 시인 총서’, ‘이데아 총서’, ‘현대 사상의 모험’, ‘대우 학술 총서’, ‘세계 문학 전집’ 등 일련의 시리즈를 비롯해 약 5천여 종의 단행본을 펴냈다. 1976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을 창간했으며,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등을 제정했다. 제45대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한 사람, “특히 장정을 맡아 아름다운 허울을 씌워 준 이중한 형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는 대목에 나오는 ‘이중한’이라는 인물이다. 여기 나오는 이중한(李重漢, 1938~2011)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출판평론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60~70년대 한국 출판 현장을 몸소 이끌어간 출판기획자이자 편집자였다. 1960년대 월간 《자유공론》, 《세대》 등 잡지 편집장을 거쳐 1970년대에는 《독서신문》과 서울신문사에서 발행한 《서울평론》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이후 언론계에 들어가 서울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김병익의 1970년대 문화담론을 담은 책
김병익 선생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이 “우리에게 창조적이며 개방적인 문화가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성실하고 증언하는 기자가 될 수 있는가”란 질문을 내포하고 있으며, 자신의 논조에 따르면 “회의스럽고 비관적”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나아가 “이 회의나 비관이 설득력을 가질수록 이 책은 더욱 무의미하고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내는 일은 결국 “이 세계와 내 자신에게 진실로 부끄러운 일”임을 고백한다. 과연 그럴 것인가?
『지성과 반지성』 초판본의 외형을 보면, 우선 4×6판형(가로 127mm, 세로 188mm) 크기에 반양장 제책 형식, 그리고 재킷 표지로 본책을 감싸고 있는 장정 형식임을 볼 수 있다. 재킷 표지 앞면을 보면 무언가 불분명한 추상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책 제목과 저자 및 출판사 이름이 세로 편집 체제에 맞추어 한자(漢字)로 표기되어 있다.
재킷 앞표지 안쪽 날개에는 담배를 오른손에 들고 안경을 낀 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젊은 김병익의 옆얼굴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사진 아래에 ‘1974년/저자’라는 표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이 나올 무렵 표지 디자인을 위해 찍은 것으로 추정됨)이 실려 있고, 그 아래에는 국한문 혼용의 책 소개 글이 실려 있다.
기자로서 비평가로서 지난 10년 동안 한국문화의 현장에 서서 이 시대를 진단하고 그것의 정신적 현실을 비판하면서 저자가 고백하는 부끄러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한 소개 글로 보아 이 책의 독자는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지식인 계층이어야 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재킷 표지를 벗겨내면 반양장 본책 표지가 드러나면서 옥색 바탕에 검정 잉크로 새겨진 활자를 만날 수 있다.
한편, 굳이 책 소개 글이 아니더라도 이 책의 도저함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거니와, 특히 다음과 같이 목차에 나와 있는 소제목을 보면 그 진면목을 얼추 짐작할 수 있다.
<1>
지성(知性)의 형성과 패배
지성과 반지성
권력과 지성
작가와 상황
한국문화에서의 양극화 현상
<2>
한국의 지적(知的) 풍토
교수·연구·연구비
한국문화단체의 비문화성
한국 속의 일본문화 공해론
한국 교회의 사회 참여
세계 속의 젊은이들Ⅰ·Ⅱ
대중문화의 비판
<3>
한국문화와 외래어
한국 출판문화의 허구
고전(古典) 국역(國譯)의 현황
한국 주간지(週刊誌)의 생리(生理)와 병리(病理)
한국 신문기자론Ⅰ·Ⅱ
특히 이 책 전반을 흐르는 당대 지식사회의 반지성적 행태에 대한 비판과 함께 36쪽에 걸쳐 조목조목 우리 출판문화와 산업의 허구성을 지적한 부분을 보면 이 책의 내용이 1970년대 문화담론이라고 흘려버리기엔 여전히 유효한 논의적 가치를 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윽고 본문 맨 뒤쪽 간기면에 이르면 저자의 간단한 약력과 함께 45년 세월에도 빛을 잃지 않은 인주(印朱) 자국 선연한 인지(印紙)와 함께 발행 관련 정보가 실려 있다. 이로써 당시 책값은 900원, 그리고 민음사 주소지는 서울 종로구 청진동, 출판등록일은 1966년 5월 19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본문 중에 들어 있는 책갈피[‘서표(書標)’ 또는 ‘bookmark’라고도 함]를 보니 그 속에도 귀중한 정보가 숨어 있었다. 당시 민음사에서 펴낸 책 중에 ‘오늘의 시인총서’로는 김수영 시집 『거대한 뿌리』를 비롯해 김춘수 시인의 『처용(處容)』, 정현종 시인의 『고통의 축제』, 이성부 시인의 『우리들의 양식』 등이 있었고, ‘문학총서’로는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 같은 문학비평서의 고전과 함께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소문의 벽(壁)』,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소설 단행본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시집은 500원, 소설책은 900원이었으니 초판본 수집에 관심이 많은 필자로서는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싶은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의 마무리를 위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저자로서 이 책을 내게 된 것이 결국 “이 세계와 내 자신에게 진실로 부끄러운 일”임을 고백한다고 한 김병익 선생의 판단은 잘못되었음을 선언해야겠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일갈한 우리 문화에 대한 비판은 곧 90년 가까운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선생이 바라보는 이 세상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성과 반지성이 끊임없이 대립하는 요즘, 김병익 선생의 일갈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지식인’과 ‘지성인’의 차이를 알고 나면 보이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끝으로, 다음과 같은 선생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21세기 지식인들 또한 얼마나 될 것인가. 진정 ‘부끄러운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오늘의 우리 지식사회에 있어 가장 우울한 현상은 압도적인 지식기능인(知識技能人)의 수와 힘에 비해 지성인(知性人)은 너무나 적고 미력하다는 점이다. 물론 지식계층의 인구는 많다. 대학교수, 학자, 언론인, 작가, 예술인 등 마땅히 지성의 위력에 의하여 존경받아야 할 지식인은 도처에 있다. 그러나 계층이, 입장이 지식인의 면모를 지녔다 해서 결코 지성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본문 58쪽
김기태 '처음책방'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