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폐막한 올해 칸 영화제의 ‘빅뉴스’는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에 위촉된 것이었다. 영화제가 중반을 향하던 5월 17일, 카트린 페가르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박 감독에게 문화예술 공로훈장을 수여했다. 프랑스 정부가 예술가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다. 한국경제신문 아르떼가 단독 입수한 장관의 수훈 연설문엔 히치콕, 니체, 소포클레스, 보들레르, 고다르가 소환됐다. 박 감독을 세계 영화사 계보에 당당히 올린 문화적 선언과 다름없었다. 한 나라의 문화부 장관이 다른 나라 예술가를 대하는 태도와 문장이 이토록 진심 어린 때가 있었던가. 이날의 연설문을 요약해 싣는다.
오늘 아침 이 자리에서 박찬욱 감독께 훈장을 드리는 것은 커다란 영광입니다. 동시에 수많은 미지(未知)와 스치는 것 같은 묘한 현기증마저 불러일으킵니다.
박찬욱 감독에게 훈장을 수여할 준비를 한다는 것은 곧 영화의 깊은 질문을 탐험할 준비를 하는 일입니다. 또한 어떤 말로도, 어떤 시도로도 완전히 정의할 수 없는 작품 세계를 너무나 부족한 언어로 요약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념(情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과 가장 낮은 모습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주름을 경건하게 펼쳐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삶 자체가 하나의 미학이기 때문입니다.
그 미학은 1963년 8월, 서울에서 시작됩니다. 전쟁으로 상처 입은 도시였지만,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서 박찬욱 감독을 맞이할 준비가 된 도시였습니다. 부친은 건축을 가르쳤고 모친은 시인이었습니다. 주변에는 형태와 선, 언어, 그리고 침묵의 미학이 있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아름다움이란 단순한 치장이나 허영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몽상가이던 어린 박찬욱은 몇 시간이고 앉아 책을 읽거나, 한국에 주둔한 미군 병사를 위한 방송을 수신하던 흑백TV 앞에 있었습니다. 서부극을 보고 제임스 본드를 처음 연기한 숀 코너리와 로저 무어의 모험을 따라갔습니다. 이 영화들은 종종 대사마저 없었습니다. 자막이 영어로 돼 있거나 없었으니까요. 박찬욱 감독은 말 없는 언어의 어린 해석자로서 의미가 숨어 있는 곳을 다른 방식으로 찾아냈습니다. 미소의 주름 속에서, 그림자의 불안 속에서, 카메라의 움직임 속에서, 몸짓과 소리의 일치 속에서. 어쩌면 바로 그 순간, 낯선 언어가 흐르는 화면 앞에서 비할 데 없는 시선이 단련됐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말이 발화되기 전에 이미 욕망과 공포, 죄책감을 읽어낼 줄 아는 그 시선이.
서강대에 입학해 철학과에 등록했지만 강의실에서 찾지 못한 영혼의 여분을 당신은 사진과 영화 동아리에서 발견했습니다. 이미지와 이야기를 탐욕스럽게 수집했고, 그것들은 훗날 당신의 영화에 색을 입혔습니다. 그 시절은 또한 한국 사회가 거대한 민주적 격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박찬욱의 세대는 독재에 맞서 거리로 나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박찬욱의 영화를 관통하는 큰 주제들-복수, 구원, 책임-은 한국 현대사의 그 격변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어느 날 박찬욱 감독은 히치콕의 ‘현기증’을 봅니다. 그것은 하나의 계시였고 미학적이고 도덕적인 충격이었으며, 한 영화감독이 인간의 집착을 존재의 건축으로 만들 수 있다는 발견이었습니다. 심지어 제임스 스튜어트와 킴 노박의 키스 장면 뒤로 일렁이는 파도의 움직임 속에서 감독의 숨겨진 천재성을 읽어냈습니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영화에 삶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숱한 실패로 시작했지만, 2000년 9월 당신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큰 흥행작 중 하나가 됩니다. 파편화된 서사로 남북 관계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며, 역사와 이데올로기로 모든 것이 규정되는 자리에서 인간성을 피워 올렸습니다. 그 성공으로 익명성을 잃는 대신 자유를 얻었고 복수를 다룬 3부작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올드보이’가 왔습니다. 그렇게 한국 영화는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했습니다. 주인공이 좁은 복도에서 망치를 들고 싸우는 장면에서 어찌 니체의 망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 철학을 재주조하던 그 망치가, 미학적이고 가치론적인 폭발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2004년 칸에서 영화 세계는 이제 감독님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해 심사위원장이던 쿠엔틴 타란티노는 ‘올드보이’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그랑프리를 수여했습니다. 왜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수천 년 된 그리스 비극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열정에서도 상처 없이 빠져나올 수 없다는 확신이 오페라처럼 정교하게 안무된 폭력으로, 분노 아래 숨겨진 지옥 같은 우수로, 무엇보다 관객을 판단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지점까지 이끌어가는 탁월한 능력으로 구현됩니다.
이 열거가 다소 길어지는 건 당신의 영화를 폭력으로 환원하는 게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를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당신의 영화는 인간에 대한 명료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방황하는 순간에도 인물들은 비극적 품위를 잃지 않습니다. 인간의 정념이라는 감옥 안에서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형수 최후의 날>과 소포클레스의 희곡 모두에서 빌려온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관객도 무감각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혼란의 우아함이 있습니다.
친애하는 박찬욱 감독님, 당신의 영화는 지극히 한국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보편적 유산의 일부가 됐습니다. 동시대 위대한 예술가들과 함께 한국 영화를 세계의 상상력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당신의 영화는 수천만 관객에게 서울이 우리 시대 영화 창작의 위대한 중심지 중 하나가 됐음을 가르쳐줬습니다. 친애하는 박찬욱 감독님, 지금 당신은 여기 칸에 와 있습니다. 영화를 하나의 위대한 예술, 총체적 예술로 사랑하는 이 자리에. 세계를 단순화하지 않고 그 모순을 드러내는 시선. 보들레르 이후 잔인함과 현실의 공포를 포기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회화 같은 영화. 칸이 올해 박찬욱 감독을 심사위원장으로 선택한 배경엔 이런 모든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가 오늘 당신을 기리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당신의 방대한 작품 세계, 그 진정성,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구축해온 독창적이고 소중한 연결 때문입니다.
칸=김은진 아르떼 객원기자/ 정리=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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