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의 여파가 첫 한미 정상회담의 무산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미 정상외교가 첫발을 내딛으려는 찰나에 제동이 걸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16∼17일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한 것을 계기로 G7 회원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설명했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앞세워 첫 정상외교 무대 데뷔전에 나선 이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일정 이틀 차인 17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사실상 확정 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캘거리에 도착해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이어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며 순조롭게 일정을 소화 중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트럼프 대통령이 남은 G7 일정을 뒤로 하고 이날 밤 귀국한다는 소식이 미국 백악관발로 갑작스레 전해졌다. 이날 G7 회원국 가운데 캐나다와 영국, 일본, 유럽연합(EU)과 잇따라 양자 회담을 한 바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정을 중단하고 전격 국내 복귀를 결정한 것이다.
이 같은 조기 귀국은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중동 상황 등에 따른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국가안보회의 준비 등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예정하고 있었던 만큼, 이런 돌발 상황에 대통령실도 당혹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예상치 못한 중동 정세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귀국 변수가 발생하면서 양국의 첫 정상회담도 예기치 못한 유탄을 맞게 된 셈이다. 당초 이번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한미 양국의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히는 통상 협상과 방위비 분담금 및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특히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회담 결과에 따라 시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한미 양국의 실무 협상 물꼬가 터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취임한 지 불과 12일밖에 되지 않은 이 대통령이 준비하기에 촉박한 일정에도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로 한 주된 이유도 이런 한미 간의 통상 현안을 풀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라는 관측도 나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출국 전 브리핑에서 "G7을 계기로 해 미국·일본 등 주요국 정상과 협의함으로써 관세 등 당면한 외교·경제통상 현안 타개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현안 타결에 동력을 부여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성과 도출을 기대했던 한미회담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해외 출장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주창한 이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을 대면해 어느 수준까지 현안 협상의 합의점을 모색해낼 수 있을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으나 일단은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끝내 한미 정상 만남이 불발된다면 이 대통령으로서는 첫 한미 정상의 대면 시점 등을 재구상해야 한다. 순방 이전의 과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셈이다. 두 정상의 다음 대면 기회로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24∼25일)에 이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가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회를 건너뛴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양 정상의 첫 면담은 미국 초청을 받은 이 대통령이 조만간 방미해 정상회담을 하는 경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가오는 한미 통상 협상 시한(7월 8일) 전 양국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한편 G7을 계기로 한 한일 정상회담의 경우 17일(현지시간) 성사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한일관계와 관련해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원칙적 대응을 하고, 경제·안보 협력 등엔 실리에 따라 대응한다는 '투트랙' 대응 방침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한일 회담이 이뤄질 경우 이 같은 기조에 따라 새 정부에서 한일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