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 간 분쟁이 격화하자 전쟁 관련주인 방위산업주는 물론 정유·해운주까지 나란히 급등했다. 세계 원유 생산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원유 가격이 치솟은 데 이어 해상 운임 상승 관측까지 나오면서다. 확전 위기가 고조되자 안전자산인 금값도 사상 최고가에 근접했다.
◇무더기 신고가 쓴 방산주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52.04포인트(1.80%) 오른 2946.66에 장을 마쳤다.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됐는데도 3년5개월 만에 2940대로 올라섰다.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된 937개 종목 중 66%에 해당하는 621개가 뛰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과 기관이 각각 451억원, 2526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3223억원어치 순매도하며 9거래일 만에 ‘팔자’로 돌아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부터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FOMO(수익 기회 상실 우려)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며 “지금 추세면 단기간 내 코스피지수가 3000을 돌파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산주가 무더기 신고가를 기록했다. 현대로템은 6.32% 뛴 19만8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역대 최고다. 한화시스템도 18.01% 상승한 6만4200원에 장을 마무리했다. 장중 6만5000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5.32%), 한국항공우주(1.13%) 등도 장중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주가 랠리에 불을 붙인 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이은 이스라엘·이란 분쟁이다. 지난주에도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 상위권을 방산 관련 상품이 휩쓴 것으로 집계됐다. ‘TIGER K방산&우주’와 ‘PLUS K방산’이 1주일 동안 각각 19.24%, 15.35% 오르며 수익률 1, 2위를 차지했다. ‘SOL K방산’(14.52%)은 4위였다.
무력 충돌이 계속되는 한 방산주가 우상향할 것이란 게 증권가 예상이다. 전차, 탄약, 방공미사일 등 무기 수요가 꾸준해서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현재로선 방산 수출 강국인 이스라엘이 자국 방어를 위해 일정 기간 무기 수출을 제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스라엘과 경쟁하거나 협력 관계에 있는 한국 기업은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유주 호재…“장기화 땐 해운주”
정유·해운주도 올랐다. 이날 한국석유는 13.58% 뛴 1만9490원에 마감했다. HD현대는 12.06%,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흥구석유는 20.11% 상승했다. 글로벌 해운 선사인 HMM(0.41%)과 팬오션(4.11%) 주가도 강세였다.
정유주가 오른 건 국제 유가가 급등한 영향이다. 이란은 하루 원유 생산량이 466만 배럴에 달하는 세계 5위 산유국이다. JP모간은 “이란이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뛸 수 있다”고 봤다.
해상 봉쇄가 현실화하면 해운주 상승 여력이 커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운임이 오를 수 있어서다. 배세호 iM증권 연구원은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면 컨테이너 운임 상승으로 한국 선사인 HMM과 팬오션이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선사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항로를 선택하면 ‘t-마일’(화물 무게와 운송 거리를 곱한 값) 수요가 11% 늘어난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다만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극단적인 보복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관측했다.
안전자산인 금 투자 수요 역시 급증세다. 지난달 트로이온스당 3300달러 선이던 금 현물 가격은 공습 이후 35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역대 최고가 수준이다. 옥지회 삼성선물 연구원은 “위험 회피 심리가 안전자산 선호로 이어지고 있다”며 “산업용 금속으로 옮겨간 시중 자금이 차익 실현 후 금·은 등 귀금속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5원80전 내린 1363원80전으로 마감했다.
양지윤/양현주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