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특별전
‘청자투각 칠보무늬 향로’ ‘청자 사자모양 향로’ 등 국보 11건, 보물 9건
“산예출향(사자가 장식된 향로) 역시 비색이다. 위에는 쭈그리고 있는 짐승이 있고 아래에는 연꽃 받침이 그것을 받치고 있다. 여러 그릇 가운데 오직 이 물건만이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1123년 고려에 파견된 북송 사신 서긍(徐兢)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사자 향로를 극찬했다.
이 기록에 가장 부합하는 유물 ‘청자 사자모양 향로’(국보)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에 나왔다. 고려청자의 정수인 상형청자(象形靑磁)를 조명하는 첫 특별전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전에다.
그간 고려만의 독창적인 기술인 상감청자에 대한 연구와 전시는 많았지만 동식물과 인물 등 형태를 빚은 상형청자에 대한 단독 전시는 없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전시를 기획한 서유리 학예연구사는 “이전까지는 상형청자에 대한 연구성과가 적었다”며 “이번에는 과학적 조사를 병행하면서 첫 전시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25개 기관과 개인 소장자, 중국·미국·일본 3개국 4개 기관의 소장품 총 274건이 출품됐는데 이 가운데 국보가 11점, 보물 9점이다. 12~13세기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 상형청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고려 상형청자는 원앙과 오리, 참외, 죽순, 표주박 등 일상적이면서 자연적인 소재를 많이 다뤘으며 불상과 보살상, 나한상 등을 빚으며 실용성을 넘어 내세의 염원까지 담았다. 상형청자에서 보듯 푸른 빛의 비색과 조형성을 추구하던 고려인의 미감은 점차 상감(象嵌), 철화 등 강렬한 장식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대표작으로는 모든 장식 기법이 총동원된 ‘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와 수행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청자 나한상’ 리움 소장품인 ‘청자 양각·동화 연꽃무늬 조롱박모양 주자’를 꼽을 수 있다. 이것 말고도 작고 아기자기한 유물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전시는 상형청자의 원형을 짐작하게 하는 삼국시대 상형토기부터 시작한다. 고려 상형청자가 중국 청자와 어떻게 다른지, 또 강진 사당리와 부안 유천리 가마터 발굴품, 태안 마도 1호선 등 최신 발굴품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3부와 4부에선 생명력 넘치는 형상들이 오묘한 푸른 빛의 향연을 펼친다.
2022~2023년 컴퓨터 단층촬영(CT)과 3차원 형상 데이터 분석 등 과학적 조사로 밝혀낸 상형청자의 제작기법을 인터렉티브 영상으로 만날 수 있디. 내부 단면과 두께가 다르더라도 일정하게 비색을 낼 수 있는 고려인들의 기술력을 엿볼 수 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오늘 하늘을 보니 비색이라는 것이 우리 가을 하늘을 반영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고려가 외침과 무신의 난 속에서도 500년간 존재할 수 있었던 힘을 상형청자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