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철의 실크로드' 따라 유라시아 경제권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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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직
시안무역관장

이형직 시안무역관장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중국 시안에서는 수십 편의 화물열차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향해 출발한다. 과거 비단과 향신료를 실은 낙타 행렬이 오가던 길 위로 이제는 자동차와 가전제품, 산업 설비, 소비재를 가득 실은 컨테이너 열차가 달린다. 중국에서는 이를 ‘철의 낙타 행렬’이라고 부른다.

지난 5월 시안에서 열린 제10회 실크로드국제박람회에는 64개국, 200여 개 해외 기업이 참가했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 기업 관계자들이 투자와 물류, 제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일대일로’가 실제 기업 투자와 물류 흐름으로 구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그 중심에는 중유럽 화물열차가 있다. 2025년 중유럽과 중앙아시아 화물열차 운행 횟수는 3만4000회를 넘어섰다. 시안발 화물열차는 연간 6000회 이상 운행하며 중국 전체 운행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시안에서 독일 뒤스부르크까지는 약 10일,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주요 도시는 5일 이내에 연결된다. 과거 수십 일이 걸리던 물류 이동이 이제는 하나의 정기 노선처럼 움직인다.

핵심은 철도 자체가 아니다. 철도를 따라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시안 국제항에는 3800개 이상의 물류·무역 기업이 모여 있다. 중국 기업은 중앙아시아를 향해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 산업 설비를 수출한다. 귀로 열차를 활용해 곡물, 광물자원 등 전략 품목을 확보하며 공급망 안정화에도 힘쓰고 있다.

중국 가전기업 캉자는 시안 집결센터 인근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생산 제품의 절반 이상을 중유럽 화물열차로 수출한다. 비야디(BYD)와 지리 등 자동차 기업도 철도망을 활용해 유라시아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장거리 운송 제약으로 어려웠던 중앙아시아 농산물 공급도 5일 만에 가능해졌다. 중국 식품기업 아이쥐그룹은 카자흐스탄에 곡물 생산기지를 조성했다. 이를 시안의 가공시설과 연계해 ‘중앙아시아 생산-중국 가공-중국 소비’로 이어지는 공급망을 구축했다.

중국 물류기업 위안퉁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대형 물류 허브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배송망 구축에 나섰다. 시안과 알마티를 연결하는 물류 거점은 단순한 창고를 넘어 집하와 통관, 분배 기능을 수행하는 복합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경제협력은 단순한 교역 확대를 넘어 공급망 통합 단계로 진입했다. 2025년 중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의 교역액은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중국·우즈베키스탄 교역액은 최근 5년 동안 3배 증가했다. 중국 기업 100여 곳이 우즈베키스탄 주요 지역에 진출해 제조업과 인프라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가 간 협력도 ‘국가 대 국가’에서 ‘도시 대 도시’, ‘산업단지 대 산업단지’ 수준으로 세분되는 추세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 기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그동안 많은 기업이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각각 독립된 시장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두 시장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이고 있다. 변화의 본질은 유라시아 경제권 재편이다. 한국 기업은 중국을 최종 소비시장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안을 비롯한 중국 서부는 이제 중국 내륙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유라시아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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