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거장의 황금빛 역작 … 베네치아를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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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둔 거장의 황금빛 역작 … 베네치아를 물들이다

입력 : 2026.05.10 16:52

지난달 타계 獨 거장 바젤리츠
유작 17점 모은 '황금빛 영웅'展
거꾸로 그린 자화상·초상화로
쇠락한 육체·말년 고독 표현
오는 8월 세화미술관 기획전

게오르크 바젤리츠가 2025년 그린 자화상 '천사들이 사라졌다'(300×215㎝·왼쪽)와 바젤리츠가 아내 엘케를 그린 초상화 '황금빛 금', 2025(450×300㎝·오른쪽).  타데우스로팍

게오르크 바젤리츠가 2025년 그린 자화상 '천사들이 사라졌다'(300×215㎝·왼쪽)와 바젤리츠가 아내 엘케를 그린 초상화 '황금빛 금', 2025(450×300㎝·오른쪽). 타데우스로팍

거장은 죽음을 직감한 듯 붓을 들었다. 60년 화업의 결론을 맺을 작업이 필요했다. 세로 4m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찬란한 황금빛을 입혔다. 그 위로 가장 정교하고 예민한 선으로 늙고 쇠락한 인체 드로잉을 그렸다. 그 자체로도 완벽한 형태지만 그 위에 윌럼 데 쿠닝처럼 즉흥적이고 과감한 터치로 색채를 더했다.

지난달 30일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난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크 바젤리츠 이야기다.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그가 2년간 붙들었던 자화상 한 점과 초상화 16점을 만날 수 있는 신작 전시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펼쳐지고 있다. 도시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베네치아의 풍광이 그의 개인전 '황금빛 영웅'의 최고의 무대가 돼주고 있다.

보트를 타고 도착한 산조르조마조레 섬의 전시장 입구부터가 황금빛이다. 그가 '영웅' 연작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를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만든 결정적 계기는 1969년부터 시작된 '뒤집힌 그림'이었지만, 그의 이름을 세상에 처음 각인시킨 그림은 20대 후반인 1965년에 그린 '영웅' 연작이었다.

이 연작 속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당당한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거대한 신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작은 머리, 누더기가 된 군복과 상처 입은 몸은 패전의 트라우마를 짊어진 독일인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작가는 "그들은 사실적인 인물이 아닌 러시아 내전 소설 속 영웅에 착안해 상상해낸 허구적 존재"라고 설명했지만, 작품은 무너진 독일의 무너진 자존심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대의 걸작으로 남았다.

60년의 세월을 돌아 다시 그린 그의 '영웅' 연작은 바스러질 듯 소멸해가는 육체를 담담하게 담아내 깊은 울림을 준다. 가벼우면서도 예리한 선들은 마치 인물이 공간 속에 부유하는 듯한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작가는 생전 인터뷰를 통해 "황금색이 드로잉과 충돌하지 않고, 그 자체로 작품을 뒷받침하며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되길 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세 회화에서 금색이 천상이나 신성한 영역을 상징하는 '초월적 공간'을 창조하는 도구였음에 주목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이콘(Icon)화나 파이윰 초상화에서 금색 배경이 인물을 마치 나무 조각에서 도려낸 듯한 효과를 낸 것처럼 그 역시 배경을 '중립화'함으로써 인물의 존재 그 자체를 영원성 속에 박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했던 것은 무엇일까. 바젤리츠는 생전 "그저 나와 아내, 그리고 세상을 향한 나의 관계를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방식으로 구축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고독의 실체'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생의 동반자이자 영원한 모델이었던 아내 엘케의 초상화는 노년의 늙고 처진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뼈만 남은 앙상한 종아리에 신겨진 높은 굽의 힐은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휠체어에 몸을 의탁한 작가 자신의 자화상 또한 거동은 불편해 보이지만, 머리를 치켜들어 하늘을 향한 시선만큼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바젤리츠는 "의도했던 대로 고독함과 형식주의적 면모를 갖추면서도, 매우 주관적이고 풍부한 서사를 담은 작품이 탄생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작품의 압도적인 크기에 대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거대한 화면이 필요하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시 기획자인 조르조 치니 재단의 루카 마시모 바르베로 디렉터는 "타계 열흘 전 촬영한 영상이 전시장 한쪽을 지키고 있으니 꼭 봐달라"며 "베네치아에 오지 못해 미안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며 울컥했다.

바젤리츠의 예술혼은 오는 8월 서울 광화문 세화미술관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베네치아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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