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신규 택지 조성 계획에
400년 집성촌 등 포함돼 불만
주민들 "공공 택지서 빼달라"
2029년 2만가구 공급 우려
'전답 다 빼앗더니 이젠 집까지 빼앗아 간다네!'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우면산터널을 빠져나오자 형형색색의 현수막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다. '내 보금자리 빼앗아 남의 보금자리 웬 말이냐' '강제 수용 졸속 개발 즉각 중단하라' 등 글귀가 시뻘겋게 적혀 있었다. 송동마을에서부터 내걸린 현수막은 식유촌마을, 우면동성당에 이르기까지 2㎞ 구간에 걸쳐 계속 나부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이곳을 '서리풀 공공주택지구(서리풀지구)' 후보지로 선정했다. 대상지를 개발해 총 2만가구를 지을 계획이다. 하지만 서리풀지구에 포함된 집단취락지구 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달 들어 본격적인 항의 행동에도 나서고 있어, 2029년 첫 분양을 하겠다는 목표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벌써 제기된다.
22일 국토부 등에 따르면 서리풀지구에는 총 3곳의 집단취락지구가 있다. 송동마을, 식유촌마을, 새정이마을이다. 현재 이곳엔 약 130가구가 살고 있다. 집단취락지구는 그린벨트 안에 이미 존재하던 마을을 정비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1971년 그린벨트 제도가 시행되고 이듬해 세 마을은 집단취락지구로 지정됐다. 아주 오래된, 유서 깊은 마을인 셈이다.
실제 송동마을에는 조선시대 단종의 장인·장모 묘도 있다. 주민들은 이씨와 송씨가 집성촌을 이뤄 400년 넘게 살아왔다고 주장한다. 이세화 송동마을 비상대책위원장(71)은 "6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며 "50년 넘게 그린벨트로 묶여 재산권 행사도 제대로 한번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예전엔 맞은편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그 땅도 아파트(서초힐스)를 짓는다고 수용당했다"며 "땅 빼앗기고 이젠 집마저 빼앗길 판이라 분통이 터진다. 죽기 살기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엔 아예 단독주택을 새로 지은 주민도 있다. 올해 1월 준공된 주택에서 살고 있는 한 모씨(65)는 "평생 전세로만 살다 처음으로 이곳에 내 집을 마련했다"며 "칠순 남편과 자연 좋은 곳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전 재산을 털어 지었다"고 밝혔다.
세 마을은 집단취락지구 해제를 위해 그간 힘써 오기도 했다. 현행 서울시 조례상 집단취락지구는 각 마을이 100가구 이상일 때만 해제할 수 있다. 서초구는 이곳의 규제 완화 방안을 찾기 위해 지난 8월 '집단취락 관리방안 수립 용역'을 내기도 했다. 인근 공인중개소 대표는 "구청에서 설문조사를 돌려 주민들이 그린벨트가 조금이라도 풀릴까 기대를 많이 했다"며 "그런데 갑자기 수용 대상이 되니 난리가 났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본격적인 반대 행동에도 돌입했다. 이달 말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를 찾아 반대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지난달엔 우면동성당 부주임 신부와 함께 전성수 서초구청장을 만나 강제 수용 반대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국토부도 주민 반발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단취락지구는 되도록 빼려고 했지만 지형상 부득이한 부분이 있었다"며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여러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2026년 상반기 지구 지정을 위해 공공주택지구로 공식 지정되기 전부터 주민들과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통상 지구 지정이 된 후에 토지 보상 절차가 이뤄지지만 미리 협의를 진행해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강제 수용이 가능해진다. 다만 주민 반발이 심하면 빠른 사업 추진은 쉽지 않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민 반발이 강하면 사업이 아주 많이 지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