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법 영향 받는 리모델링
도정법 적용 재건축과 달리
전자투표 법적 효력 못갖춰
현실과 동떨어진다 지적도
정비사업 관련 조합의 투표 방식을 두고 혼선이 거듭되고 있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오는 6월부터 전자투표가 공식 인정되는 반면, 다른 법을 적용받는 리모델링은 여전히 전자투표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관련 판결도 엇갈렸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정비사업 과정에서 전자식 투표·동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법원이 전자투표 효력을 두고 상반된 판단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에 판결된 두 사건 중 한쪽에서는 전자투표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유효하다고 봤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성원 대치 2단지 아파트 재건축준비위원회가 개최하려던 총회를 취소시켰다. 기존 리모델링 주택 조합을 해산하기 위한 목적의 총회였지만 리모델링 조합이 이를 막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한 것이다.
법원의 핵심 판단은 재건축준비위가 추진한 전자투표가 적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합 규약에 따르면 직접 출석이 어려운 조합원은 서면결의서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전자투표는 서면결의서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조합이 정해놓은 규칙에 전자투표가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전자투표 효력을 인정한 판결도 나왔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서울 성동구 성수 3지구 재개발조합장을 상대로 일부 조합원이 제기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9월 실시된 조합장 보궐선거의 전자투표 허용 여부를 두고 제기됐다.
당시 선거는 서면결의서 우편투표, 사전투표, 전자투표, 현장투표 등 네 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체 조합원 959명 중 698명이 참여해 현 조합장이 322표(46%)를 얻어 당선됐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이나 정관에 근거가 없는 전자투표를 허용한 것은 부당하다"며 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전자문서법에 따르면 전자문서는 그 형태만으로 법적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며 "전자투표지가 전자문서법에서 정한 서면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만큼 도시정비법상 의결권 행사 방법인 '서면'에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전자문서도 일종의 서면으로 볼 수 있어 전자투표가 유효하다는 판단이다.
두 판결이 전자투표를 두고 상반된 결론을 내린 것은 현행 법령상 전자투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혼선을 줄이기 위해 국토부는 도시정비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 오는 6월부터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전자투표를 허용할 방침이다. 개정된 시행령에 따르면 조합은 총회를 소집할 때 전자적 방법을 통한 의결권 행사 방식과 기간을 조합원에게 통보해야 한다.
문제는 주택법을 적용받는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전자투표를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일시적으로 전자투표가 허용된 사례가 있지만 주택법에서는 여전히 감염병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전자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다.
전자투표 필요성에는 업계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다. 홍수임 법무법인 현 변호사는 "주택법도 도시정비법과 같이 전자투표를 일반적인 의결권 행사 방식으로 개정해 법적 혼선을 줄이고 조합 운영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