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력반도체 기업 제엠제코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미국 엔비디아와 수백억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용 전력반도체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50억원. 90% 이상이 수출에서 나오는 전력반도체 강소기업이다. 제엠제코는 올해 매출액 400억원을 무난히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력반도체 ‘불모지’로 꼽히는 한국에서 제엠제코와 같은 기업이 부산에서 이런 성과를 올린 것은 10여년에 걸쳐 전력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해온 부산시의 ‘뚝심’이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부산지역 전력반도체 업계는 중국의 저가 제품을 비롯해 미국과 독일의 기업과 경쟁할 수 있도록 트랙 레코드를 쌓을 실증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 제엠제코의 방열 기술 통했다
지난 4일 부산 기장군 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의 제엠제코 현장에서는 폭 1㎝ 정도의 구리판이 전력반도체 장비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수십 대의 기계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이 ‘ㄷ’자 형태의 홈이 파인 구리판을 기계가 일정한 리듬으로 두드렸다. 가공된 구리판에는 맨눈으로 겨우 식별이 가능할 정도의 미세한 점이 찍혀 나왔다. 이 작은 점이 엔비디아와 수백억원 규모의 납품 계약을 체결한 비결이다.
제엠제코가 7년여에 걸쳐 직접 설계하고 개발한 이 장비는 초음파로 구리판에 방열 소재를 접합하는 역할을 한다. 구리 소재 클립 기술을 적용해 기존의 제조 방식을 대폭 보완했다. 이 기술을 통해 열이 가해지는 환경에서도 소자에 물리적 영향이 없으며, 안정적으로 전력반도체가 작동한다. 기존의 와이어본딩 기술 대비 60% 이상 전기 저항률이 감소했으며, 열전도율은 50% 이상 올랐다. 특히 직접 개발한 장비는 제조 공정 단순화로 이어져 수율을 90% 이상 개선하는 효과를 거뒀다. 투입되는 원자재 역시 경쟁사 대비 50% 이상 줄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방열 소재는 제엠제코가 직접 개발했다.
◇ 전력반도체 ‘불모지’에서 거둔 성과
가전, 산업·상업 인프라, 방산, 통신. 전력반도체는 일상생활부터 첨단 제품과 인프라까지 대부분의 장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전차와 미사일 등 군용 무기를 비롯해 송·배전 인프라의 구동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므로 전력반도체는 각국에서 전략물자로 취급하고 관리하고 있다. 최윤화 제엠제코 대표는 “전기차를 예로 들면 직류 방식의 배터리와 교류 방식의 모터 사이에서 전류를 전환하고, 모터의 속도를 정교하게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게 전력반도체”라며 “전기저항과 열 손실을 줄이는 게 전력반도체 기술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트랜지스터 정도의 취급을 받던 전력반도체가 각국의 전략물자로 떠오른 것은 스마트폰과 전기차의 등장 때문이다. 배터리 전력을 기기 내에 정교하게 분배하고, 열 손실을 관리하는 기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2007년 설립된 제엠제코는 설립 직후부터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인연을 맺어 아이폰 첫 모델에 제품을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세계 첫 공급 업체로, 현재 제엠제코의 제품은 전 세계 스마트폰에 적용되고 있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90%가 제엠제코의 방열 클립 소자를 사용 중이다.
이 회사의 수익 모델은 크게 세 가지다. 방열 소재를 직접 개발하고 칩에 연결한다. 패키징과 전력반도체 장비 개발 기술도 보유했다. 제엠제코가 개발한 전력반도체 제조용 장비는 10여종에 이른다.
◇ 활짝 열린 생태계
부산시는 2012년부터 전력반도체 기반 구축을 위한 사업을 벌여왔다. Si(실리콘) 기반의 전력반도체가 SiC(탄화규소)를 기반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부산시의 목표는 90% 이상 수입에 의존하는 SiC 전력반도체 국산화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여러 차례의 정부 예비 타당성 조사 탈락 끝에 2016년 상용화 사업을 위한 예타에 통과했다.
이후 부산시는 전력반도체 상용화 센터를 준공하고 6인치 웨이퍼 기반의 공공 팹을 구축했다. 이후 2023년 전력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 지정, 2024년 반도체 기회발전특구 지정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현재 8인치 웨이퍼 기반의 공공 팹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5개 기업이 입주한 기장군 방사선의과학산단에 들어설 수출용 신형연구로 개발 및 실증사업은 전력반도체와 강력한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평가다.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활용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중성자도핑(NTD)을 통해 고가의 대전력용 반도체 소자 제조에 활용할 수 있다. 고순도 실리콘 단결정에 중성자를 쪼이면 실리콘 원자핵 중 극미량을 인(P)으로 핵변환 해 고품질 반도체 소재로 변환시키는 원리다.
하지만 지역 전력반도체 생태계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국반도체소자협회 소속자 120여개 중 부산에 본사를 둔 기업은 단 5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쟁사의 진입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부산 기업의 실증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부산시가 ‘해양반도체’를 선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부산시 박동석 첨단산업국장은 “우선은 작은 어선으로 시작해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반도체가 극한의 환경에서도 잘 작동한다는 데이터를 얻어야 한다”며 “전력반도체의 활용 가능성이 해양을 넘어 인공위성 등 우주 및 방산까지 무궁무진하므로 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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